'뿔'난 숟가락이 초대합니다, 맛의 신세계로

    입력 : 2016.08.10 03:00 | 수정 : 2016.08.10 11:16

    [식기에 공감각 더한 전진현 디자이너]

    독특한 모양·소재로 만든 식기, 입안 자극… 맛 더 잘 느끼게 도와
    세계 각국 요리사·미술관 손잡고 공감각 연구 통한 맛 극대화 집중
    "음식 음미하면 다이어트 효과도"

    옻칠한 숟가락을 든 디자이너 전진현씨
    옻칠한 숟가락을 든 디자이너 전진현씨. /이진한 기자
    돌기가 있다. 한 숟가락은 머리 부분에, 또 한 숟가락은 바깥쪽 둥근 부분에 솟았다. 도깨비방망이 같다. 포크는 끝이 갈라지고 구부러졌다. 끝을 빨간색으로 칠한 포크도 있다.

    이 희한한 식기(食器)들은 전진현(36)씨가 디자인했다. 그는 촉각·시각을 촉진시켜 맛을 극대화하도록 둘레나 바닥에 돌기가 있는 숟가락, 모양·소재가 각각 달라 입안에서 다른 촉감을 느끼게 하는 포크를 만들어 화제가 된 디자이너다. 2012년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DAE) 석사과정 졸업 프로젝트로 만든 작품들은 영국 BBC,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에도 소개됐다.

    최근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한 아트센터에서 작품 전시회를 마친 그는 "내 작품의 출발은 공감각(共感覺)"이라며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세계 여러 나라 요리사와 레스토랑, 미술관과 손잡고 실험적 미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는 논문과 연구 수행 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왔었죠. 뉴욕 섹스박물관으로부터 컬래버레이션(협업) 제안을 받기도 했고요."

    공감각은 음식을 맛보며 소리나 색을 떠올리는 것처럼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오감(五感)을 모두 사용하는 건 식사할 때가 유일합니다. 공감각으로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로 음식을 떠올렸고, 그래서 식기 디자인을 하게 됐어요." 전씨는 "혀와 입술, 입볼 등 미뢰가 분포하는 모든 영역을 물리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가 돌기의 형상"이라며 "돌기가 짠맛을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과연 돌기의 물리적 자극이 짠맛의 양을 조절하거나 맛을 대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①머리 바깥쪽 둥근 부분에 돌기가 솟아있는 금속 소재 숟가락. ②앞끝이 불룩하고 빨갛게 칠해진 세라믹(도자) 숟가락. ③머리 주변에 돌기가 오돌토돌 붙은 세라믹 숟가락. 돌기는 입안과 혀의 촉각을 자극해 미각을 강화한다. 숟가락의 소재와 색에 따라 같은 아이스크림 맛도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①머리 바깥쪽 둥근 부분에 돌기가 솟아있는 금속 소재 숟가락. ②앞끝이 불룩하고 빨갛게 칠해진 세라믹(도자) 숟가락. ③머리 주변에 돌기가 오돌토돌 붙은 세라믹 숟가락. 돌기는 입안과 혀의 촉각을 자극해 미각을 강화한다. 숟가락의 소재와 색에 따라 같은 아이스크림 맛도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전씨가 디자인한 숟가락 중에서 바닥과 둘레에 돌기가 있는 것으로 아이스크림을 맛봤다. 돌기가 혀에 닿자 낯선 촉감 때문인지 의식이 입으로 집중됐고, 신기하게도 맛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전씨는 "입안과 혀에 물리적 자극이 가해지면 식사 속도가 느려지면서 맛에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돌기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 일반 숟가락보다 더 오랫동안 입에 물고 있게 됩니다. 입안에 음식물을 오래 머금으면 후각 작용이 강화돼 맛을 더 잘 느끼게 되죠. 네 살짜리 조카도 '이모가 만든 숟가락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해요."

    이번엔 앞쪽이 불룩하게 부푼 모양의 숟가락을 써봤다. 적은 양을 떠서 입에 넣었는데도 입안 가득 아이스크림을 머금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덜 먹었지만 포만감이 느껴졌다. 전씨는 "최고의 다이어트 비결은 음식의 맛을 인식하고 음미하며 먹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음식을 섭취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야 포만감을 인지합니다. 혀와 입에 물리적 자극이 주어지면 더 천천히 오래 먹게 되지요. 그러면 급하게 먹을 때보다 훨씬 적은 양을 먹게 돼요."

    전씨는 중도 실명 시각장애인을 위한 요리 교실에서 자원봉사 하면서 연구에 필요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공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것.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은 후각과 청각이 엄청나게 발달해 공감각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듯) 거리에서 냄새를 맡아 위치를 파악하고 방향을 찾는다거나, 아침 알람 시계 소리가 '까끌까끌'해서 잠에서 깬다는 분들이 시각장애인 중에는 흔해요."

    그의 연구 영역에는 온도도 포함된다. "한국인이 더 건강하려면 음식 온도를 지금보다 10~15도 낮춰야 한다"고 했다. "음식이 너무 뜨거우면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없어요. 차갑게 식은 된장찌개와 순두부찌개 맛보신 적 있어요? 너무 짜서 먹기 힘들어요. 한국 음식도 펄펄 끓는 온도가 아닌, 따뜻한 정도로 먹으면 소금 섭취량을 낮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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