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1980년 작성한 카네기협회 보고서를 보면, 루터교회가 세워진 1530년부터 계속 운영된 기관이 66곳인데 4곳을 제외한 62곳이 대학이다. 4곳은 가톨릭 교단, 루터 교단, 아이슬란드 의회, 맨 섬(Isle of Man) 의회다. 대학의 연속성은 근대 지성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위치를 잘 말해준다. 대학은 종교로부터 독립하고 정치로부터 자유를 지켜냈기에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근대에도 존속할 수 있었다.

지식 정보가 부(富)의 원천이 된 시대에 역설적으로 대학이 흔들린다. 원인은 무엇보다 교육의 위기이다. 40년 후면 현재 지식 가운데 80~90%가 쓸모없어지는 세상에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앨빈 토플러는 기업이 100마일로 달린다면, 교육 체계 변화 속도는 10마일로 늦다고 했다. 교육기관 가운데 가장 느린 곳이 대학이다.

이화여대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직접적 원인은 구성원들과 소통 없이 일을 추진한 것이다. 결국 계획을 철회했지만 문제가 끝난 건 아니다. 토플러가 말한 속도 차이에서 비롯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됐다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변화를 거부하는 관성의 힘이 세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는 말처럼,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신분이다. 신분으로서 대학은 고착되지만, 대학 전공이 평생 직업을 결정했던 시대는 끝나간다.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 말대로 지금 대학 졸업생이 사회에 나가면 적어도 6번은 직업을 바꿔야 하는 세상에서 대학의 교육과 기능은 바뀌어야 한다. 종래 대학이 첫 직업을 위한 교육을 했다면, 이제는 6번째 직업을 가질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학의 변화를 거부할 게 아니라 사회 속의 대학이 돼야 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소통은 필수 조건이다. 한국 사회 변혁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집단이 대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생들은 더 이상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빠른 사회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대상자가 됐다. 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학생들의 주인 의식으로 촉발된 이화여대 사태가 제4차 산업혁명의 변화 속에서 대학이 '죽느냐, 사느냐'를 함께 고뇌하며 소통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교육부 대학 구조조정 재정 지원 사업의 전면적 검토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