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가을이 오리니…

조선일보
입력 2016.08.10 03:11

한국서 우유배달·철공소 잡부하며 스스로 생계꾸린 프랑스인 老사제
20년 입던 평상복 차림으로 善終… 삶은 순간순간이 모인 한 톨 씨앗
잘 영글어 새 생명의 싹 틔우려면 마음을 가다듬고 가을을 대비해야

권이복 남원 도통동 성당 주임신부 사진
권이복 남원 도통동 성당 주임신부
차가웠다. 참 싸늘했다. 그 노사제의 얼굴은…. 내 평생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답게 살다 가신 분. 향년 94세! 살 만큼 사셨다. 그러니 섭섭할 것도 서운할 것도 없다. 더욱이 저 먼 나라 프랑스 사람. 그런데 그의 죽음은 아니, 그의 온 생애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그분 마지막 가실 때 입은 바지는 24년 전 나와 같이 사실 때 즐겨 입던 그 바지였다. 또 그가 가실 때 입은 티셔츠도 24년 전 그때 입었던 그 티셔츠다. 누군가 뒤에서 짜증 섞인 소리로 한마디 한다. "왜 하필 저 옷이야?" 그러자 같이 살던 형제가 속삭이듯 답한다. "가장 좋아하셨어." 화장도 안 하고 수의도 입지 않았다. 20년 넘게 입고 살았던 평상복, 그 옷과 양말 구두. 그대로 입고 신고 편안히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분은 쉰이 넘어 한국에 왔다. 그래서 우리말이 좀 서툴렀지만 언제나 즐겁게 재밌게 말씀했다. 불어, 독어,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어를 잘했고, 특히 베트남어에 아주 능숙했다. 베트남 신학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다가 추방당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프랑스에서 교수 요원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런 분이 한국에서 한 일은 우유 배달과 철공소 잡부였다. 나이 들어 노동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주로 외국 문헌을 번역해 주는 대가로 받는 몇 푼의 돈으로 살았다. 천주교 사제였지만 교회나 신자들로부터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스스로 벌어 생계를 꾸렸다. 연세가 들어 양로원에 가기 전까진 수도원의 청소와 수사들의 식사 준비 등 가사를 도맡아 했다. 그들의 수도원은 통상 생각하는 크고 넓은 정원이 잘 가꾸어진 빨간 담장 뒤의 멋진 서구식 건물이 아니다. 그들 수도원은 그야말로 사람 서리―사람들 속에 있다―그것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속에 있는 허름한 전세방이다. 23년 전 우리가 살았던 수도원도 경기도 안산 원곡동의 다세대 주택 3층 옥탑방이었다. 두 개의 방 중 하나는 성당, 하나는 우리 4명의 수사 신부가 함께 먹고 자는 방이었다. 우리끼리는 수사, 신부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그냥 나이가 많으면 형님, 나이가 어리면 형이라 부른다. 흙을 퍼다가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웬만한 채소는 다 자급자족하며 살았는데 그 텃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우리 4식구의 오줌 한 방울, 똥 한 조각도 버려서는 안 되었다. 설거지물 한 방울도 버리지 않고 텃밭을 가꾸는데 재사용했다. 물은 새벽 3시나 돼야 받을 수 있었다. 낮에는 모두 각자의 직장에 나가서 생활비를 벌어 와야 했는데 사람이 없어도 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다. 가져갈 것 없는 집이니 문 잠글 일도 없었다. 지금도 그때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흔 넘은 프랑스인 노 사제가 공장에서 퇴근하는 우리를 위해 흥얼흥얼 노래하며 음식을 장만하던 그 행복한 얼굴. 자전거를 둘러메고 계단을 오르면 "헤이! 이복형, 힘들지요. 어서 와서 저녁 들어요" 하며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맞이하던 그 선한 얼굴. 그런데 그 얼굴이 이리도 차갑다. 이 세상을 떠나가신 것이다. 어디로 가셨을까? 지금 그 아름다운 영혼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열흘 넘게 계속되는 열대야. 참 덥다, 더워. 이런저런 일로 지칠 대로 지친 몸. 그러나 힘을 내야 한다. 이대로 시체처럼 몸을 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전거를 타고 요천 강가를 달린다.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어! 이 웬 향기지? 고소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이 신비로운 냄새. 어느새 불쑥불쑥 통통하게 나락이 뱄다. 나락 익는 냄새다. 이제 가을이 되어 추수가 끝날 때까지 이 향기는 온 벌판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매일매일, 아니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게 익어갈 것이다. 그리고 한 톨 생명이 되어 그 생을 마감하리라. 한 톨의 나락, 그러나 그 안에 그의 온 생애가 담겨 있다. 살아야겠기에 그동안 겪었던 모든 것, 잠깐 맺혔다 사라진 아침 이슬 한 방울, 그를 스쳐간 한 줄기 바람, 한 가닥 햇살, 메뚜기 멸구의 한숨 소리까지 다 담겨 있다. 모두 다 담겨 새롭게,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그날을 기다린다. 하여, 이 더위가 고맙다. 이 더위를 먹고 나락이 영글고 사과는 익어간다.

내 생애 가장 존경했던 이국의 노 사제, 94년을 살아 잘 영근 씨앗 되어 가셨다. 94년의 온 생애가 한순간도 예외 없이 그 씨앗 속에 담겨 있다. 허나 곧, 이 씨앗은 새 생명으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나는 안다.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삶, 지금의 이 삶, 그리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할 삶,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한순간도 예외 없이 모여 한 톨 씨앗이 됨을. 그리고 그 씨앗은 곧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울 것임을. 이 진리가 날 행복하게 한다. 훨훨 하늘을 날게 한다.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찬양하고 찬미하는 내 노랫소리에 휘영청 둥근 달이 두둥실 춤추며 따라온다.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자! 이복아! 이제 조금만 더 가자. 이제 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리니…. 자!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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