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의 맛 세상] 1100만원에 낙찰된 어느 레스토랑의 낡은 재떨이

    입력 : 2016.08.04 03:15 | 수정 : 2016.08.04 14:33

    뉴욕 최고 레스토랑 '포시즌스'
    57년 만에 이전… 잠정 영업중단, 낡은 테이블·접시 등 경매 부쳐
    단골 추억 담긴 물건 앞다퉈 입찰, 예상가 4배인 46억원에 완판
    소비자와 감성적으로 연결되면 브랜드건 식당이건 영원할 것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사진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뉴욕의 한 식당이 오랫동안 영업해온 자리를 떠나게 됐다. 식당 주인은 식탁 의자 소파 심지어 재떨이까지 식당에서 쓰던 물건들을 경매 부치기로 했다. 지난주 열린 '중고 식당 기물(器物) 경매'는 놀랍게도 410만달러(45억5000만원)나 벌어들였다.

    물론 평범한 식당은 아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포시즌스(The Four Seasons) 레스토랑이다. 힘깨나 쓴다는 명사들이 1959년 문 연 이 식당 단골이다.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와 조지 부시 부자, 헨리 키신저, 오프라 윈프리, 워런 버핏,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랠프 로런, 마사 스튜어트, 바버라 월터스, 엘튼 존, 안나 윈투어 등이 식사했다. 이곳에 드나든다는 건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고, 가장 좋은 테이블에 앉는 건 '최고 중 최고'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뉴욕의 랜드마크이기에 57년 동안 세들어 있던 시그램 빌딩을 떠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상도 못 할 일이 현실이 됐다. 2000년 시그램을 사들인 부동산 개발업자 애비 로젠(Rozen)이 "포시즌스는 과거의 유물"이라며 임대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포시즌스의 공동 소유주인 줄리안 니콜리니(Niccolini)와 알렉스 폰 비더(Von Bidder)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 1년 뒤 식당을 다시 열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16일 저녁 서비스를 끝으로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식당 기물 일부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경매에 부쳤다.

    지난달 26일 열린 경매를 앞두고 경매회사는 133만달러(약 15억원)를 벌어들일 거라고 내다봤다. 결과는 예상가의 4배 가까운 410만달러(46억원)였다. 가장 비싸게 팔린 건 역시 상호(商號)가 새겨진 명판(名板)이었다. 당초 5000~7000달러가 예상됐지만 약 20배 더 높은 9만6000달러(1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바에 놓여 있던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높은 의자) 1세트(2개)는 1만3000~1만8000달러(1400만~2000만원)에, 라운지에 놓여 있던 의자 1쌍은 3250~5500달러(360만~610만원)에 낙찰됐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포시즌스의 테이블이나 의자, 스툴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건축가·예술가들이 디자인한 '작품'들이다. 그만한 가격에 낙찰된다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수십 년 사용한 재떨이나 여기저기 흠집 난 설탕 그릇까지 높은 가격에 경매가 이뤄졌다. 포시즌스 로고가 새겨진 낡은 재떨이는 4개 1세트가 5500~1만달러(610만~1100만원)에 팔렸다. 예상가(500~700달러)보다 대략 20배나 더 비싼 금액으로, 스툴 세트와 비슷하다. 커피를 주문하면 딸려 나가는 설탕과 크림을 담아 내던 은(銀)그릇 세트도 예상액의 5배인 1400~3000달러(160만~330만원)에 경매됐다.

    세계적 광고회사 사치앤사치 CEO 케빈 로버츠(Roberts)는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러브마크(lovemark)'라고 명명했다. 이 브랜드들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와 감성적으로 연결됐다는 점이다. 합리를 뛰어넘은 열렬한 지지와 애정, 존경이 러브마크의 특징이라고 했다. 포시즌스는 외식업계의 '러브마크'였고, 그렇기에 단골들은 낡은 재떨이까지도 큰돈을 거리낌 없이 지불하며 소유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포시즌스는 손님들과 애착 관계 형성 능력이 탁월했다. 한 단골은 포시즌스와 얽힌 자신의 추억을 뉴욕타임스에 털어놨다. 그는 포시즌스를 찾은 20여년 전 어느 날 주인이자 지배인인 니콜리니에게 "내일부터 4주 동안 해외출장 간다"고 말했다. 그러자 니콜리니는 "그럼 한 달이나 (포시즌스를 오지 못하니) 맛있는 음식을 못 먹겠군요"라고 농담을 했다. 다음 날 공항으로 떠나기 15분 전, 포시즌스에서 보낸 퀵서비스 배달원이 애피타이저·메인·디저트가 2인분씩 담긴 터퍼웨어 플라스틱 용기와 와인 2병을 들고 왔다. 이 단골은 이코노미칸 끝 좌석에 앉아 포시즌스 음식을 먹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포시즌스 단골 중에는 이런 추억을 가진 이가 무수히 많다.

    유명 인사들이 포시즌스를 찾는 이유를 니콜리니는 "연속성"이라고 답했다. 식당의 연속성에는 음식과 서비스뿐 아니라 위치·인테리어·테이블·의자·포크·나이프·재떨이까지 포함된다. 이 연속성이 57년 만에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인터뷰에서 니콜리니는 "포시즌스는 끊임없이 혁신하고 있다"고도 했다. 2000년대 초 닷컴 열풍 때는 수트·넥타이 드레스코드를 없앴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는 값비싼 식재료 대신 맛은 좋지만 비싸지 않은 것으로 대체해 음식값을 낮췄다. 새로운 장소에서 문 여는 포시즌스가 연속성을 잃고 몰락할지, 혁신을 통해 재도약할지 궁금하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