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언니, 이제 집에 가자'

    입력 : 2016.08.03 03:07

    김윤덕 문화부 차장
    김윤덕 문화부 차장
    올 초 극장가에 '귀향' 열풍이 불었을 때 영화를 봐야 할지 망설였다. '다 아는 이야기'라는 오만, '어차피 끝난 일'이란 체념이 있었다. '귀향을 보며 팝콘 먹지 말라'는 열성 관객들의 강짜도 싫었다. 극장으로 향한 건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7만5000명 시민이 십시일반 보태 14년 동안 만들었다는 영화였다. 팝콘은 사지 않았다. 천방지축 열네 살 정민이가 어머니와 헤어져 어딘지 모를 곳으로 실려 가는 대목부터 목이 멨다. 공포와 광기, 폭력에 질려 혼절하는 장면에선 두 눈을 감았다. 멍투성이 두 다리를 계곡 물에 담근 소녀가 '가시리 가시리잇고…'를 노래할 때 객석은 숨죽여 흐느꼈다.

    관객 수 359만 명은 기적과 같은 숫자였다. 미국에서 개봉했고 얼마 전 일본에서도 상영을 시작했다. 눈물의 연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국제시장', '연평해전'에 이은 애국 마케팅의 적중도, 일본군 만행에 대한 분노도 아니었다. 그것은 미안함, 부끄러움에서 온 눈물이었다. 지난해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라 더욱 그랬다. 억지 사과, 100억원이라는 웃지 못할 배상금에 분개했지만, '이제 그만 끝낼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속내가 있었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격한 논쟁은 그 피로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경제협력, 안보, 관광 등 한·일관계가 결빙 상태에 이르자 위안부 피로감은 극에 달했고, 명민한 전략 없이 감정적 대응만 해온 정부는 피해 할머니들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도 않은 채 12·28 합의문을 발표했다.

    협상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렇다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 출범식에 캡사이신까지 뿌릴 일은 아니었다. 주도면밀하진 못했으나 역대 어느 정권보다 위안부 이슈에 매달려 전 세계에 그 심각성을 알려온 정부다. 일본과 한통속으로 치부해 득을 보는 건 혐한(嫌韓) 세력뿐이다. 합의문을 발표했다고 해서 위안부 문제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도장 하나로 역사청산이 될 리 만무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재단이 만들어진 만큼 위안부 피해 진상 규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위안부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고 싶어도 연구자료가 일천해 애를 먹고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시민단체도 '불가역적'이란 단어에 분개만 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찾아서 해야 한다. 일본이 어깃장 놓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뒤집어도 늦지 않다.

    영화 '귀향'의 백미가 마지막 장면에 있다고 믿는다. 죽어 나비 된 두 주인공이 어깨를 감싸안으며 "언니야, 이제 고마 집에 가자" 한다. 노란 나비로 환생한 소녀들이 고향 들판을 가로질러 어머니 품으로 날아가는 장면에서 위로와 참회의 눈물이 강물처럼 흐른다. '용서하되 잊지 않는 것'이 배상 액수보다 중요하고 무서울지 모른다. 일본대사관 앞이 아니라, 70억 세계인 가슴에 소녀상 세우는 길을 머리 맞대고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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