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 核실험장 주변 주민들, 두통·체중감소·귀신병 소문"

조선일보
  • 김명성 기자
    입력 2016.08.01 03:00 | 수정 2016.08.01 07:48

    ['시찰왕' 김정은, 얼씬도 안하는 곳이 있다… 핵실험장 주변]

    탈북자 단체 통일비전연구회, 현지 출신 탈북자 13명 조사

    - 핵실험 만탑산에서 내려오는 물
    길주읍으로 한데 모이는 지형… 지하수·토양 방사능 오염
    - "영변 인근서도 기형아 소문"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을 핵실험장 갱도 공사에 동원"

    북한 핵실험 장소와 인터뷰한 탈북자 주거지
    북한이 지난 2006년부터 올해 1월까지 4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한 함북 길주군 풍계리 인근의 북한 주민들 중에는 원인 모를 두통과 체중 감소, 감각기능 저하 등 신체 이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핵 실험장 주변 주민들은 이런 증상을 '귀신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핵실험에 따른 피폭(被曝) 가능성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풍계리 인근 주민들은 탈북한 이후에야 건강 이상과 방사능 오염과의 관련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핵실험장 인근을 시찰했다는 보도가 한 번도 없는 배경에도 피폭 우려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탈북자단체인 통일비전연구회(회장 최경희)가 1~3차 핵실험을 가까이서 경험한 길주군 길주읍 출신 탈북자 13명을 최근 인터뷰한 결과, 이들 모두 건강 이상을 직접 겪었거나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이웃을 봤다고 말했다. 이들이 살았던 길주읍은 핵실험장인 풍계리로부터 약 27㎞ 떨어져 있다. 13명 중 2명은 3차 핵실험(2013년 2월)까지 3차례 체험했고, 5명은 2차 핵실험(2009년 5월)까지 2차례, 6명은 1차 핵실험(2006년 10월)을 겪고 탈북했다. 4차례 핵실험을 모두 겪은 조사 대상자는 없었다.

    3차례 핵실험을 경험한 40대 탈북자 A씨(2015년 7월 탈북)는 "2013년 여름 무렵부터 길주군 일대에는 온몸에 힘이 없고, 먹어도 살이 빠지고, 두통에 시달리는 등 까닭 모르게 아픈 사람이 많이 생겼다"며 "이런 환자를 두고 '귀신병에 걸렸다'고 수군댔다"고 전했다. A씨는 "귀신병 환자들은 아파도 병원 진료를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점쟁이를 찾아간다"고 했다.

    A씨처럼 3차례의 핵실험을 겪고 작년 1월 탈북한 B씨(50대 여성)도 "내가 원래 냄새를 잘 맡기로 유명했는데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5월쯤부터 갑자기 후각 능력이 떨어졌다"며 "비슷한 시기에 미각도 약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등의 이상 증세가 왔다"고 말했다. 최근 길주군의 친척과 통화했다는 B씨는 "올해 20대 후반인 아들이 2013년(3차 핵실험) 이후 온몸에 땀을 흘리고 기운을 못 쓰는 병에 걸렸는데 4차 핵실험(올해 1월) 이후 병세가 더 악화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2차례 핵실험을 겪은 C씨는 "2010년부터 시력 저하와 불면증에 시달렸다"며 "병원에 갔더니 '희귀병'이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C씨처럼 2차례 핵 진동을 느낀 D씨도 "2010년부터 길주에는 늑막염과 급성결핵에 걸리는 사람이 대폭 늘었다"며 "약도 쓰고 잘 먹는데도 낫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1차 핵실험만 체험한 탈북자들도 "소화불량과 위염 증세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길주읍 주민들은 "남한에 와서야 핵실험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탈북자 A씨는 "길주에 살 때는 핵실험을 할 때마다 위험성은커녕 '우리도 핵 강국이 됐다'는 자긍심이 강해졌다"며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의 무서움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탈북자 B씨도 "핵 기지가 있는 평안북도 영변군 인근에서 기형아가 나온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지만 길주군은 별문제가 없는 줄 알고 살았다"며 "지난해 한국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주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원폭 피해자와 길주 '귀신 병' 증세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지난 4차례의 북한 핵실험 과정에서 방사능이 곧바로 유출된 적은 없다. 1차 때를 제외하고 한·미 정보 당국은 지하 핵실험 직후 외부로 빠져나오는 불활성 기체(제논·크립톤 등)를 포집하지 못했다. 그러나 방사능이 핵 실험장 인근의 지하수와 토양 등을 오염시켜 길주군 주민의 안전을 위협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지하 핵 실험장 갱도에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9중 차단문과 3중의 핵폭풍 차단벽을 설치한다"며 "그러나 강한 방사능은 금방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변 토양과 지하수 등을 계속 오염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도 풍계리에서 북·중 국경까지 불과 100㎞ 떨어진 만큼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걱정한다.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양시위 선임연구원은 지난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3차례나 핵실험을 진행한 만큼 방사능으로 인한 심각한 지하수 오염이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길주읍은 핵실험장이 위치한 풍계리 만탑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한데 모이는 지형이라고 한다. 길주읍 출신 탈북자는 "읍 주민 대부분은 핵실험장에서 12㎞쯤 떨어진 남석 저수지의 물을 마신다"고 전했다. 핵실험장의 피폭 위험 때문에 핵실험장 공사에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이 동원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길주군 인근인 화성군에 위치한 16호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을 핵실험장 갱도 공사에 투입한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길주읍 출신 탈북자들은 1~3차 핵실험 때의 상황도 전했다. 2006년 1차 때는 수초 동안 약간의 진동만 느꼈지만, 2차 때는 집이 흔들리며 일부 유리창이 깨졌고, 3차 때는 주방의 그릇이 떨어질 정도로 강한 진동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이는 핵실험 강도가 갈수록 세진 것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탈북자 박사인 최경희 통일비전연구회장은 "4차례의 핵실험이 한곳(풍계리)에서 이뤄졌는데도 핵 실험장 인근 환경과 주민 건강 문제에 대해선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영변 핵시설과 풍계리 핵 실험장 인근의 피폭 문제도 통일 이후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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