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더치페이

    입력 : 2016.07.30 03:16

    그제 '김영란법' 합헌 판결이 나고 저녁에 친구 둘과 함께 김치찌개 집에 갔다. 삼겹살 3인분과 목살 1인분을 구웠고 찌개 2인분에 밥을 먹었다. 소주도 곁들였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정확히 9만원이 나왔다. 김영란법에 따른 직무 관련 식사 접대 한도가 한 사람에 3만원이다. 밥 한 공기 더 시켰으면 한도를 넘을 뻔했다. 밥값은 자리를 주선한 친구가 다 냈지만 9월 28일부터는 혹시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 눈치 보게 생겼다.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스웨덴 대사들은 한 해 한 차례 모여 회의를 한다. 몇 년 전 서울에 온 스웨덴 대사 60여명이 회의 끝나고 청담동 재즈 클럽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와 공연 관람을 한 후 대사 모두가 계산대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각자 자기 신용카드로 자기가 먹은 금액만큼 값을 치르겠다고 했다. 한꺼번에 지불할 줄 알고 총액을 뽑아놓았던 주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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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부담하는 '더치페이' 문화는 서구는 물론 일본서도 일상적이다. 일본인은 남한테 폐 끼치기 싫어한다. 밥이나 술을 얻어먹으면 갚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불편하게 여긴다. 일본 음식점에서 주문할 땐 종업원이 먼저 "한꺼번에 내느냐, 따로 낼 거냐"고 묻는다. 남녀가 데이트할 때도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안다.

    ▶우리 중·장년층은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는 문화에 익숙하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한 사람이 한턱내는 일이 잦다. 각자 치르려면 왠지 좀스러운 것 같아 계산대 앞에서 승강이를 벌인다. 반면 젊은 세대는 더치페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음식점에서 저마다 계산하려고 줄 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다며 손님 많이 몰리는 시간대엔 각자 계산을 거절하는 음식점도 생겨났다. 그래도 젊은이들에겐 방법이 있다. 한 명이 대표로 지불한 뒤 나머지가 자기 밥값을 간편하게 송금하는 '토스' 같은 '앱'이 인기다.

    ▶김영란법은 접대 문화에 일대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미국 공직자들은 한 번에 20달러, 한 해 50달러 넘는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 관가 주변엔 19.99달러 메뉴가 흔하다. 우리 관청 주변에도 2만9900원짜리 메뉴가 생기지 싶다. 그러나 법 조항이 명확지 않아 새로운 관행이 자리 잡기까지 꽤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억울한 처벌이나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상대가 누구든 더치페이만큼 현명한 방법도 없다. 공직자·언론인이 섞인 친구들 모임도 회비제를 도입하면 된다. 서로 부담을 주지 않으니 익숙해지면 모두가 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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