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속초에는 아무 일 없다

    입력 : 2016.07.21 03:14

    에너지 넘치던 스물몇살, 속초까지 200㎞ 무전여행
    시골 농사 도와주며 숙식 해결, 속옷만 입고 뛰어든 그 바다…
    포켓몬 잡으러 속초 몰려간다는데 가상 아닌 '진짜' 느끼고 돌아오길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지금 포켓몬을 잡으러 속초행 고속버스 시외버스를 죄 매진시키며 떠난 그들 또래였을 때, 서울에서 속초까지 무전여행을 했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대략 200㎞를 걸어가는 것이 여행의 목표이자 전부였다. 어머니는 만원인가 비상금을 찔러주시며 "나는 모르겠다, 왜 사서 그런 고생을 하는지. 여차하면 버스 타고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배낭 하나씩 메고 잠실 어디선가 만나 걷기 시작한 우리는 팔당에도 못 미쳐서 이 미욱한 여행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체력은 괜찮은데 지루해서 못 걷겠다"고 했고 나머지들은 "도대체 이런 짓을 누가 먼저 제안했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떠날 때의 혈기와 호기와 패기는 온데간데없었다. 46번 국도로 진입한 뒤로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첫날 밤을 마석 언저리 어느 문 열린 마을회관에서 자고 일어난 우리는 새벽 밭일을 하는 분들에게 아무 일이나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밥 좀 주십사고 본격적인 구걸을 시작했다. 그 아침에 쓰레기 좀 주워 드리고 얻어먹은 고봉밥과 된장국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끼니가 되었다.

    요령이 붙자 별로 걸을 필요가 없었다. "서울에서 온 천둥벌거숭이 네 명"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일감과 밥, 술이 동시에 굴러왔기 때문이었다. 쓰레기 모아 태우기부터 시작해 농약 치기, 잡초 뽑기, 상추와 고추 따기, 복숭아며 참외 따기 같은 일들을 하면 어김없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속초행을 알게 된 시골 사람들은 우리를 경운기나 트럭에 태워 조금씩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그렇게 놀며 일하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미시령을 넘어 속초 앞바다에 도착한 것은 서울을 떠난 지 꼭 1주일 만이었다. 수영복을 가져가지 않아 속옷만 입고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던 우리는 그날 저녁 각자에게 얼마씩의 비상금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뒤 진탕 먹고 마시며 써버렸다. 서울로 돌아올 때 버스는 무슨 돈으로 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현우의 팝 컬처] 속초에는 아무 일 없다
    /이철원 기자
    어머니 말씀처럼 왜 그때 그런 미친 짓을 했는지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스물 몇 살 우리에겐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었고 그 에너지를 발산할 만한 출구가 없었다. 학기 중에는 거의 매일 벌어지는 시위 현장에서 그 에너지를 터뜨렸으나 방학에는 그마저도 시들했다. 스스로 낯선 환경에 몸을 던져 혹사하는 무전여행이, 기성세대 눈에는 무모하게 보였겠지만 우리가 그나마 생각해낼 수 있었던 탈출구였던 셈이다.

    5년 전 자전거로 서울~속초 200㎞를 하루에 주파한 뒤 밤 버스로 돌아오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예전의 무전여행을 생각하며 새벽 잠실 나루터에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두 명이 떠난 자전거 여행은 인제에서 위기를 맞았다. 점심을 먹고 평상에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시간이 너무 늦어진 것이다. 우리는 20년 전처럼 후회하거나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대신 그 동네에서 몇만 원에 트럭 한 대를 전세 냈다. 자전거 두 대를 짐칸에 실은 트럭이 불과 몇십 분 만에 미시령 옛길 앞에 우리를 내려줬을 때, 3㎞의 마지막 언덕길을 앞둔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보면서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전이란 위험한 것이고 이만큼 한 것도 대단하다고 서로 격려해주는 어른이 돼 있었다.

    젊은이들이 포켓몬 잡으러 속초로 몰려가고 속초시에는 시장 지휘하에 '포켓몬고 전략지원사령부'가 생겼으며 이제부터라도 가상현실이 아니라 증강현실에 투자해야 한다는 등의 온갖 뉴스를 보며, 정말 이것이 이른바 '헬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 의아했다. 무슨 기술적 이유 때문에 오직 속초에서만 포켓몬이 잡힌다고 하니, 그게 강화였으면 강화로 몰려가고 거제였으면 거제로 몰려갔을 것이다. 때아닌 속초 열풍에 속초는 그 자리에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는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

    속초가 아니라 속초의 무선통신망과 스마트폰 속에만 있는 포켓몬이 청년들에게 어떤 실존주의적 물음을 던지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의 무전여행과 심지어 불과 5년 전의 자전거 여행을 떠올려봐도 과연 컴퓨터 게임에 이렇게 열광하는 '흙수저 세대'를 이해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게다가 마침 큰돈 번 게임회사 대표와 검사 친구 사이의 스캔들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 않은가. 청춘들이여, 속초에는 아무 일도 없다. 설악과 동해가 그대로이며 바위와 파도도 달라지지 않았다. 포켓몬 다 잡았으면 새벽 바다에 나가 진짜 속초를 느끼고 돌아올 일이다.


    [지역 정보]
    '포켓몬 고 열풍' 속초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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