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종교인 말의 무게

입력 2016.07.20 03:14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사진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사드 배치는 한반도 안정과 국제 평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이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사드 배치는 남북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것이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을 두고 종교계가 최근 발표한 논평과 입장문의 주요 내용이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보수 개신교계를 대변하는 한기총은 '찬성', 진보 시각을 반영하는 교회협은 '반대'다. 입장은 상반되지만 양측은 모두 '평화'를 이유로 삼고 있다. 한쪽에선 평화를 위해서 사드 도입을 찬성하고, 반대편에선 평화를 위해 사드 배치를 철회하라 한다. 종교 단체들이 표방하는 상반된 '평화의 조건' 앞에서 국민은 헷갈릴 법하다.

그런데 이미 알 만한 국민은 짐작하고 있다. 국가적,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 어느 쪽이 어떤 의견을 발표할지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국군의 이라크 파병(派兵), 국가보안법 폐지 등 여러 논란 때도 종교계는 보수·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찬반 공방을 벌였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종교계 역시 특정 사안에 대해 찬반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국가 중요 사안에 대한 종교 단체들의 발언은 무거워야 한다.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 사안을 중재하고 정리하기보다는 종교 단체조차 한쪽 당사자가 되어 비슷한 말을 보태는 것도 보기 민망하다.

최근의 사드 배치 논란을 보면서 작년 3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가 발표한 '후쿠시마 사고 4주기를 맞으며'라는 입장문이 떠올랐다. 당시는 월성 1호기의 연장 가동을 놓고 안전 문제로 논란이 뜨거웠다. 주교회의 정평위는 그 이전에 4대강 사업, 원전(原電) 신설, 밀양 송전탑, 제주 해군기지 등을 반대했었다. 천주교계 안팎에선 '정평위는 이번에도 원전 연장 가동을 반대하겠지'라는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발표 내용은 예상을 깼다. 정평위는 당시 "핵발전소 재가동과 관련한 심의 과정은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사안인 만큼 교회가 안정성 심의 과정이나 법률 준수 여부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행동일 것"이라고 했다. "논란 중인 사안과 관련하여 어느 한쪽의 주장만 큰 목소리로 강조하여 분열을 자극하기보다는 합리적이고 철저한 자료에 근거한 대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논의와 활동을 통해 문제 해결에 다가서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오랜만에 종교인다운 묵직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 반가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불과 1년여가 흐른 지금 정평위도 '예측 가능했던 옛날'로 'U턴'한 모양새다. 지난주 정평위는 민족화해위원회와 공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의 군사적,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현재의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1년 전 '합리적이고 철저한 자료에 근거한 대화'를 강조하던 그 정평위가 맞나 싶을 정도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국민의 불안도 크다. 속인(俗人)들이 종교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뭔가 세속과는 다른 차원의 혜안을 바라기 때문이다. 무리한 기대는 아닐 것이다. 종교인 말의 무게가 회복되길 기대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