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에 봉쇄당한 총리… 경찰이 최루액 뿌리며 퇴로 열자 탈출

입력 2016.07.16 03:00 | 수정 2016.07.16 07:59

[사드 성주 배치]
대통령 해외방문 중인데…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총리가 사실상 감금당해

난장판 된 사드 성주 배치 설명회 - 성주군민 3000여명 군청에 모여
黃총리·韓국방 사드 발언때마다 날계란·물병 던지고 욕설·고함
黃총리, 시위 잠시 주춤해질때 버스서 내려 군청 뒷문으로 피신
승용차 두번 바꿔타며 빠져나와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15일 경북 성주군청에서 열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관련 설명회가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국내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맡은 국무총리와 군을 통솔하는 국방부 장관이 6시간 넘게 시위대에 사실상 감금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부가 이곳에 사드를 배치키로 결정한 것에 분노한 성주군민들은 황 총리 일행이 탄 버스가 군청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트랙터로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고 버스 주위를 둘러싼 채 대치했다.

군청 가득 메운 3000여 주민

황 총리는 이날 오전 한민구 국방장관 등과 함께 헬기 편으로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읍 성산리 공군부대(성산방공유도탄포대)를 둘러봤다. 이어 오전 11시쯤 성주군청을 찾았다. 청사 앞 주차장엔 이미 '사드 배치 결사반대'라고 적힌 붉은색 머리띠를 한 군민 3000여명(경찰 추산)이 모여 있었다.

계란 세례 -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15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민심 설득을 위해 경북 성주를 찾았지만,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경호원들이 우산을 펴들고 황 총리에게 날아드는 계란과 물병을 막고 있다.
계란 세례 -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15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민심 설득을 위해 경북 성주를 찾았지만,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경호원들이 우산을 펴들고 황 총리에게 날아드는 계란과 물병을 막고 있다. /뉴시스
황 총리와 한 국방장관 등 정부 인사가 군청 정문 계단에 들어서자 날계란과 물병 등이 날아들었다. 황 총리는 양복과 셔츠에 계란 등이 묻은 상태로 마이크를 잡고 "사드 배치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네가 여기 살아라" "개XX야" 같은 고함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또다시 물병 수십 개와 계란 등이 날아왔고, 경호 요원들이 우산을 펼쳐 이를 막았다. 황 총리는 "성주군민 여러분, 죄송하고 거듭 죄송합니다"고 했다.

◇계란·물병 날아들고…

황 총리 발언이 끝나자 김항곤 성주군수가 나서 "정부는 왜 성주 군민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주민은 "우리가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데 화가 안 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발언 기회를 잡은 한민구 국방장관은 오전 11시 30분쯤 "여러분이 걱정하는 사드 전자파가 건강에 전혀 유해하지 않음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물병과 계란 등이 날아들었다. 몇몇 사람은 정부 관계자들을 향해 뛰어들려고 하다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자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황 총리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 10개 중대 1300여명, 사복 경찰 300여명이 동원됐다.

총리 일행 못 떠나게 출구 봉쇄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황 총리 일행은 군청 안으로 들어갔고 오전 11시 40분쯤엔 군청과 붙어 있는 군의회 건물 출입문으로 나와 미니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나 곧바로 군민들에게 둘러싸였다. 주민들은 트랙터 3대를 동원해 주차장 출구를 봉쇄했다. 한 30대 남성이 "차에 불 질러뿌라"라고 소리치자 다른 30대 여성은 "맞다, 뜨거우면 나오겠지"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한 군민이 "당신네들은 성주 사람 아니지 않으냐"고 항의하자 자리를 뜨기도 했다.

트랙터에 막히고 - 15일 오전 경북 성주군청 앞에서 성주군민들이 황교안 국무총리 일행이 탄 버스(오른쪽)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트랙터로 주차장 출입문을 가로막고 있다. 이날 황교안 국무총리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군민들의 거센 항의로 6시간 넘게 버스와 승용차에 갇혀 있었다.
트랙터에 막히고 - 15일 오전 경북 성주군청 앞에서 성주군민들이 황교안 국무총리 일행이 탄 버스(오른쪽)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트랙터로 주차장 출입문을 가로막고 있다. 이날 황교안 국무총리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군민들의 거센 항의로 6시간 넘게 버스와 승용차에 갇혀 있었다. /김종호 기자
조희현 경북지방경찰청장은 총리가 탄 버스를 지키다 시위대가 던진 얼음 페트병에 맞아 왼쪽 눈썹 윗부분이 5㎝쯤 찢어졌다. 일부 성주군민은 시위가 과열 기미를 보이자 "안 돼, 안 돼" "무폭력"을 외치기도 했다.

군민들은 황 총리가 탄 버스와 5시간 넘게 대치했다. 주민 대표 5명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 황 총리, 한 장관과 한 시간쯤 면담을 했다. 본지가 입수한 대화 녹음 파일에서 한 여성은 "저는 전자파가 무서워 집에서 전자레인지도 쓰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사드 배치를 재검토해달라"고 호소했다. 황 총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서 실효적인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고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뒷문으로 피신 - 황교안 국무총리가 경호 요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니 버스에서 내려 군청 뒷문 쪽으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다. 주변은 황 총리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요원들이 분사한 소화기 분말로 뿌옇다.
뒷문으로 피신 - 황교안 국무총리가 경호 요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니 버스에서 내려 군청 뒷문 쪽으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다. 주변은 황 총리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요원들이 분사한 소화기 분말로 뿌옇다. /연합뉴스

황 총리는 시위가 잠시 주춤해진 사이 버스에서 내려 군청 뒷문으로 빠져나간 뒤 승용차로 옮겨 탔다. 경찰은 황 총리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휴대용 소화기를 분사하고, 최루액을 뿌렸다. 황 총리는 다시 군중에 가로막혀 발이 묶이자 다른 승용차로 옮겨 탄 다음 사복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시위 현장을 빠져나갔다. 성주군청에 들어선 지 7시간 10분, 처음 버스에 오른 지 6시간 30여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황 총리가 떠난 지 10여분 뒤 시위 현장을 벗어났다.

한편 이날 시위에 참가한 사람 중 일부는 외지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성주군민이 아닌 사람이 100명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중 40여명의 신원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