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게 손해면 안보도 팽개친다' 참담한 국민 의식

조선일보
입력 2016.07.16 03:20

황교안 국무총리가 15일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THAAD) 배치 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성주에서 주민 설명회를 가진 뒤 6시간 넘게 버스에 갇히는 일이 일어났다. 이날 성주군청 앞에서 설명회가 시작되자 황 총리에게는 계란과 물병이 날아들었다. 조희연 경북지방경찰청장은 날아온 물체에 왼쪽 눈썹 위가 찢어졌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황 총리의 설명은 "개××야" 같은 욕설에 묻혔다.

황 총리가 군 청사 안으로 피신하자 주민 수십 명이 진입을 시도해 몸싸움도 벌어졌다. 이어 주민들이 떠나는 총리 일행의 버스를 가로막는 대치가 오후까지 이어졌다. 이날 성주군청 앞에는 3000명 이상이 모였다. 일부 주민은 자녀 등교까지 거부했고 행사장에서는 중·고교생들도 눈에 띄었다.

전자파 괴담은 이미 설 자리가 없어졌다. 전날 국방부는 군 기밀 노출 부담을 감수하면서 조기 경보 레이더 '그린파인' 기지와 패트리엇 기지를 공개해 전자파 강도를 측정해 보였다. 그린파인은 사드 레이더보다 전자파 출력이 높지만 30m 앞 전자파가 허용치의 4.4%였다. 패트리엇 레이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선동꾼들은 주파수와 출력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라는 다른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이런 막무가내식 주장은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오죽했으면 국방장관이 "제가 제일 먼저 사드 레이더 앞에 서서 실험해 보이겠다"고 했겠는가.

이제 누구나 내심으론 사드 레이더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날 성주에서 상식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무법 천지'가 벌어진 것은 '땅값' '집값' '농작물값'과 같은 이해관계 때문이다. 괴담 영향을 받아 땅값 등은 잠시 출렁일 수는 있어도 시간이 지나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원상회복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런 합리적 태도와 인내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유사시 북한은 핵·화학 탄두 미사일로 국군·미군의 주요 시설을 가장 먼저 공격할 것이 명백하다. 사드 배치는 이 위협을 조금이라도 더 막아보자는 조치다. 누구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고 오직 국토와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사드 배치로 거론된 지역마다 다 들고일어나 '결사반대'를 외쳤다. 괴담이 거짓임이 눈앞의 증거로 드러났는데도 성주 반대 주민들은 들어보려 하지도 않는다. 일부에선 주민 설득이 부족했다고 하지만 지역이 선정되는 순간 귀를 닫고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상황은 언제든 그대로 벌어졌을 것이다. 성주군수는 "왜 성주에 일방적 희생만 강요하느냐"며 사실상 반대 급부를 요구하고 있다. 사드보다 더한 안보 시설이 전국에 퍼져 있는데 그곳 모두가 '왜 우리만 당하냐'고 나오면 나라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성주에서 난장판이 벌어진 것엔 지역구 국회의원들, 지역 정치인들 책임이 크다.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발표되던 날 대구·경북 의원 21명은 단체로 정부 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장관, 청와대 수석을 지낸 인사, 대통령의 호위 무사를 자처했던 진박(眞朴) 등 친박계가 다수였다. 이들은 성주 주민을 자극하는 불을 질러 놓고 뒤로 빠졌다. 성난 대중(大衆)에게 맞서 당당하게 바른말을 하는 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다. 나라의 안보를 중시한다던 정치인들이 실은 의원 배지를 탐하는 모리배에 불과했다.

지금 대통령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가 열리는 몽골에 있다. 이 순간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총리가 1차적으로 책임지고 대처해야 한다. 그 총리가 6시간 넘게 시위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국방장관도 완전히 발이 묶였다. 휴전 중인 나라가 이러고도 넘어지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참담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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