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준 사격

    입력 : 2016.07.11 03:16

    미국 총기 사건에선 대개 범인이 총을 닥치는 대로 난사한다. 그런데 2002년 워싱턴에선 3주에 걸쳐 시민들이 잇따라 조준 사격을 당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 마당 잔디를 깎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른 총탄을 맞았다. 열세 차례 열 명이 숨졌다. '워싱턴 스나이퍼' 사건이다. 피해자 인종·연령·성별에도 공통점이 없었다. 시민들은 극한의 공포에 휩싸였다. 범인은 걸프전에 참전했던 존 무하마드 부자였다. 무하마드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았다고 주장했지만 사형당했다.

    ▶저격수를 뜻하는 스나이퍼(Sniper)는 야생 도요새 스나이프(snipe)에서 나왔다. 18세기 인도의 영국군 장교 사이에 이 새를 쏘아 잡는 경쟁이 벌어졌다. 워낙 작고 재빨라서 맞히기 힘들었다. 스나이프를 떨어뜨릴 만큼 총을 잘 쏘는 사람을 가리켜 그때부터 스나이퍼라고 불렀다. '워싱턴 스나이퍼'가 민간인을 무차별 조준했다면 지난 주말 댈러스에서 터진 총격 사건은 경찰을 정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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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은 높은 건물을 돌며 경찰만 골라 방아쇠를 당겼다. 다섯 명이 숨지고 일곱 명이 다쳤다. 스물다섯 살 흑인 존슨은 경찰과 세 시간을 대치하며 총격전을 벌이다 경찰이 투입한 폭탄 로봇에 사망했다. 그는 대치 중 경찰에게 "며칠 전 경찰관이 흑인을 사살해 화가 많이 났다. 백인, 특히 백인 경관을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공병으로 복무한 그는 사설 학원에서 다양한 화기 전술을 배웠다고 한다. 저격 장소를 옮겨 다니는 이동 사격을 능숙하게 구사해 경찰은 처음에 저격범이 여럿이라고 오판했다.

    ▶경찰 저격은 시위대가 경찰의 잇단 흑인 사살에 항의해 시위대가 도심을 행진하던 중에 일어났다. 지난주 루이지애나주에선 30대 흑인이 총을 지닌 채 CD를 팔다 체포되면서 총 네 발을 맞아 숨졌다. 미네소타주에선 차 안에서 검문을 받던 흑인이 신분증을 꺼내다 사살됐다. 두 사건은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퍼졌다. 1992년 LA 폭동을 비롯해 여러 흑인 폭동이 백인 경찰의 흑인 구타와 사살에서 불붙은 것처럼.

    ▶경찰관 저격은 1960~70년대 폭풍처럼 몰아친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전 반전운동 때도 없던 일이다. 그만큼 미국 사회의 충격도 크다. 하지만 근본적 악순환의 고리는 똑같다. 인종 갈등과 총기 소유, 경찰 폭력과 흑인의 분노…. 댈러스의 저격 사건은 미국이 안은 고질적 문제들을 다시 한번 고스란히 드러냈다. 21세기에도 갈등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다양하고 폭력적인 양상으로 번져 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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