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대통령 스피치라이터

    입력 : 2016.07.07 03:16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The Lady's not for turning).' 대처 영국 총리가 1980년 보수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시 영국은 복지를 줄이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대처리즘에 대해 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어나 '유턴'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이에 대한 대처의 답이 이 문장이었다. 필자는 대처 총리와 임기 11년을 함께한 극작가 출신 로널드 밀러였다.

    ▶리더의 명연설 뒤에는 뛰어난 스피치라이터가 있다.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으십시오"라는 말로 유명한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 연설은 시어도어 소렌슨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21세기 미국의 '담대한 희망'을 얘기한 오바마의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연설문은 존 파브로라는 참모가 주도한 것이다. 좋은 대통령 연설은 대통령이 해야할 말, 하고 싶은 말,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다 담아야 한다. 스피치라이터가 연설자와 늘 교감하며 의중을 충분히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다. 


    [만물상] 대통령 스피치라이터
    ▶모든 대통령 일정에는 대통령의 발언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청와대에는 '대통령의 말'을 만들어내는 연설비서관이 있다. 대통령 일정은 하루에 몇 개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연설비서관 업무는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 적확한 '한 문장'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체력도 중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8년간 연설문을 담당했던 강원국씨가 청와대 출근 첫날 받은 질문은 "몸은 튼튼한가"였다.

    ▶아무리 비서관이 있다 해도 연설의 주인은 역시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초안을 올리면 빨간 펜으로 빽빽이 수정해 내려 보냈다. 다 쓰기 어려울 정도로 고칠 곳이 많으면 구술한 녹음테이프를 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컴퓨터 앞에 앉아 고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관계자들을 모아 회의를 자주 했다. 8·15 경축사는 20번 가까이 회의했고, 2011년 미 의회 연설문은 25번이나 독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고도 국민 머릿속에 남을 만한 명문장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 역할을 해온 조인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최근 사표를 냈다. '박 대통령 의중을 가장 잘 표현해낸다'던 비서관이라 사직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는 "과로 누적으로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4년부터 12년 동안 박 대통령 연설문을 담당했다고 하니 그럴지도 모른다. 후임은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보다는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잘 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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