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여름 휴가에 가져갈 단 한권의 책

7월의 시작입니다. Books도 2016년 여름특집을 시작합니다. 1회는 '이번 여름휴가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 모두 5명의 예술가·학자·탐서가를 모셨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로 전세계에 문명(文名)을 떨치고 있는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 젊은 작가 소설을 연 30권 탐독하는 것으로 이름난
71세의 한세예스24홀딩스 김동녕 회장, 경쾌와 위트의 차원이라면 실패한적 거의 없는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현대 뇌과학의 최전선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
그리고 이제는 (젊은)'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김연수입니다.

    입력 : 2016.07.02 03:10

    하라리 교수의 한국 신문 기고는 처음입니다. 지난 4월 한국 방문 당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가 즐거웠다며 청탁에 응했습니다. 그가 처음 제안했던 책은 2016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조비 워릭의 '검은 깃발:ISIS의 부상'(Black Flags: The Rise of ISIS). 하지만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게 문제였죠. 결국 '뉴요커'지의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에번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로 결정했습니다. '중국의 당대(當代)에 관한 최고의 흥미진진한 논픽션'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책은, 지난해 기자가 주변에 가장 많이 선물한 책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대중에게는 낯설겠지만, 김동녕 회장은 경제경영서가 아니라 소설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독서가입니다. 연매출 2조원의 '회장님'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죠. 이번에는 동화를 추천했군요. 다섯분의 추천도서는 유럽사·물리학·현대중국·생태학·동화 등 장르도 다양하군요. 

    중국은 이 세계에서 새로운 경제 거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보면 난쟁이다. 오늘날 중국의 이데올로기는 과연 뭐란 말인가. 공식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지금 중국의 정부 정책 또는 평범한 중국 시민들의 일상활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마오쩌둥은 여전히 상하이 젊은 기업가들의 꿈과 베이징 주부들의 소망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요즘의 중국 국민이 정말 믿는 것은 무엇일까.

    매우 분명하게도, 중국의 엘리트와 대중 모두 ‘경제 성장’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은 숫자로 보증되어 왔다. 지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산당은 수억 명을 가난의 수렁에서 끌어올리며 세계사에서 가장 놀라운 경제 기적 중 하나를 이뤘다.

    1970년대의 중국은 대량 기근(飢饉)과 아사(餓死)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는 굶어서 죽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 경제가 계속 성장해주기만 한다면, 일반 국민은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국의 정치 체제 역시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맹렬한 속도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단 성장이 느려지면, 문제가 시작된다. 자신이 어떤 이데올로기와 믿음을 갖고 사는지에 대한 확신이 적다면, 정당성과 정통성은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중국의 현대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은 경제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에번 오스노스(뉴요커 전 베이징 특파원)는 새로운 중국의 정신을 탐험해보려고 시도한다. 엄청난 경제 호황의 수면 아래에서 도대체 어떤 해류가 흐르고 있을까. 중국의 차세대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경제 성장과 돈 버는 일 외에, 이 세대는 무엇을 믿을까.

    물론 오스노스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완벽한 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을 매우 풍성하고 생생하며, 또한 미묘한 차이를 살려가며 총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통찰력은 매우 중요하고, 문체는 독자를 홀리며, 이야기 서술 방식은 비극에서 희극으로 질주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미국인’인 오스노스가 유럽 관광지에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합류하는 대목이다. 미국인 오스노스가 중국인 관광객의 시선으로 로마와 파리를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보여주는 최고의 서문(序文)이 될 것이다.

    나는 지난 4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일정이 너무 빽빽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오스노스가 내게 알려준 것들을 발견할 때면, 꽤 흥미로웠다. 이 책은 현대 중국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일부 변화시켰다. 올여름, 여러분도 이 책과 함께 즐거우시길.

    China is the new economic giant of the world. But at the same time it is an ideological dwarf. What is indeed the Chinese ideology today? Officially, China is still a communist country. But do communist ideals really explain the behavior of either the Chinese government or the ordinary Chinese citizens? Do Marx, Lenin and Mao still shape the dreams and aspirations of young Shanghai entrepreneurs and Beijing housewives? What then exactly do the ordinary Chinese believe these days?

    Quite obviously, both the Chinese elite and the Chinese masses believe in economic growth. And this faith is well-warranted. Over the last three decades the Communist Party has orchestrated one of the most astounding economic miracles in history, lifting hundreds of millions out of poverty. Whereas in the 1970s China was still a byword for ‘mass famine,’ today more Chinese die from obesity than from starvation. As long as the economy keeps growing, ordinary people remain content with what they have, and the Chinese political system remains stable forever. But the economy cannot keep growing at such a furious rate forever, and once growth slows down, the lack of ideological depth may create a dangerous crisis of legitimacy.

    Unlike many other books about China, especially dealing contemporary China, that focus only on the economic story alone, Evan Osnos tries to uncover the soul of the new China. What deep currents flow underneath the surface of the huge economic boom? How does the coming generation of Chinese see the world? Do they believe in anything besides mere economic growth and money-making?

    Osnos does not provide the perfect answers to all those questions of course, but he paints a very rich, vivid and nuanced picture of the Chinese superpower in this book. His insights are very important, his writing is quite captivating, and his narrative races from the tragic to the comic. One of the most hilarious parts of the book, I think, tells how Osnos – an American – joins a Chinese group tour of classical Europe. Looking at Rome and Paris through the eyes of a Chinese tourist may be one of the best introductions to the new global order of the twenty-first century.

    Personally, I visited China for the first time last April. Since my schedule was so tight, I had no chance to better understand China itself. But sometimes when I found what Osnos told me, I was a little bit excited. I can say it changed partly my view of contemporary China. Please enjoy your reading this book for this summer!

    '사피엔스' 저자 하라리 교수와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대담

    이번 여름휴가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쓰여졌으나 어른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인 성장소설 『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을 다시 읽을 계획이다. 가끔 딱딱한 서류에서 벗어나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동화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나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 책은 어렵지 않은 영어로 쓰여 있어 영어를 배운 이들이라면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으며, 워크북도 함께 들어 있으니 혹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좋은 책을 만나게 되는 독서의 기쁨에 영어 공부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영어로 된 동화책을 읽을 땐 나만의 두 가지 독서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문장 하나 하나를 소리 내서 읽어보는 것이다. 동화 속 인물들의 대사를 소리 내어 읽으며 내 귀로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느낌이다. 두 번째는 동화를 귀로 듣는 것이다. 이 책에는 오디오북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데,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성우가 재미있고 생생하게 동화를 읽어준다. 나는 시원한 나무 그늘 밑이나 파라솔 아래에서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망중한을 즐긴다. 그러다 보면 슬며시 잠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때엔 동화 속 주인공들을 꿈에서 만나는 기쁨도 간혹 누릴 수 있다.

    책의 주인공은 도자기로 만들어진 토끼 인형 ‘에드워드 툴레인’으로, 열살 소녀 애빌린의 생일 선물이다. 그녀의 할머니 펠레그리나가 프랑스의 장인에게 특별 주문하여 만들어진 에드워드는 항상 우아한 비단옷을 입고 자신만의 특별한 옷장까지 갖고 있다. 에드워드는 애빌린의 극진한 사랑과 배려를 받으면서도 이를 당연하게만 여긴다. 어느 날 애빌린의 가족들과 배를 타고 여행을 가던 에드워드는 우연한 사고로 바다 속으로 내던져지면서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깊은 바다 밑바닥에 처박혔던 에드워드는 한 늙은 어부의 그물에 걸려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며, 이후 어부의 가족들과 거리의 부랑자, 가난한 소년과 그의 여동생 등 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사건들을 겪게 된다.

    도자기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졌던 에드워드는 사람들을 만나며 성장한다. 사랑을 받을 줄만 알고 사랑을 줄 줄은 몰랐으며, 사랑의 소중함을 모르던 에드워드는 어느덧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누군가를 진정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작가가 이를 그려내는 과정은 참으로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특히 에드워드가 사랑했던 소녀 사라 루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에드워드와 이별하는 장면은 여러 번 읽었음에도 읽을 때마다 다시 슬퍼져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에드워드는 성미 고약한 식당 주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지만, 에드워드를 진심으로 아끼는 소년 브라이스의 진실한 마음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구하게 된다. 스물 한 조각으로 산산조각 난 얼굴은 다시 붙여지지만 예전과 같이 흠집 하나 없는 예쁜 모습은 아니다. 인간에 빗대어 생각한다면, 나이 들어 늙은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런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원치 않는 이별이 힘들어 이제는 더 이상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던 에드워드는 인형 가게 한 켠에서 다시 사랑할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고, 자신에게 첫 번째 사랑을 주었던 애빌린과 그의 딸을 다시 만나게 된다. 먼 여행을 떠나 신기하게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게 된 것. 

    살아가다 보면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은 긴 세월 동안 배워가야 하는 것이며, 어떤 이들은 평생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기도 한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속삭인다. ‘마음을 열어,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널 위해 올 거라고. 하지만 먼저 네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해’.

    우리는 좋고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돈, 애인, 그리고 책. 오늘날 우리 삶이 고단한 이유는 침 바를 일이 자꾸 사라지기 때문이다. 침 바르며 돈 셀 일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월급은 계좌로 자동 이체되고, 계산은 카드로 한다. 나이 들수록 사람에게 침 바를 일은 더더욱 없다. 참지 못하고 애먼 곳에 어설프게 침 바르다간 매우 위험해진다. 혹은 아주 ‘드~럽다’. 이제 침 바를 수 있는 대상은 책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 거다.

    전자책이나 인터넷 뉴스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는 마지막 지점이 바로 이 ‘침 바르기’다. 빨리 그다음 내용을 알고 싶어 손가락에 침을 발라 다음 페이지를 미리 잡고 있는 종이책 읽기의 그 충만함은 스마트폰의 터치 따위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침을 바르지 않는 독서는 오르가즘 없는 섹스다. 종이책, 종이신문이 사라질 수 없는 현상학적 근거다.

    이왕이면 좀 가치 있는 책에 침을 바르자. ‘1913년 세기의 여름’이다. 지난 몇년간 본 책 중 가장 흥미로웠다. 모름지기 문화사는 이 책처럼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넘기고 싶어 침을 퉤퉤 뱉어가며 읽는다. 어쩌다 보니 내 서재에는 이 책이 네 권이나 있다. 독일 유학 시절 지도교수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고, 번역본은 몇 권이나 사두고 선물하다가 이제 한 권 남았다. 번역도 참 깔끔하다.

    유럽의 ‘좋은 시절’, 즉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마지막 해인 1913년에 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을 엮어 놓은 책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되어 있는 책의 목차는 그저 형식이다. 문화부 기자 출신 저자 플로리안 일리스는 우리가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이들, 가령 쇤베르크, 마르셀 프루스트, 아돌프 로스, 릴케, 슈니츨러, 프로이트와 같은 이들이 1913년 그 한 해를 어떻게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 부리고, 슬퍼했는가를 참으로 자세히 서술했다. 푹 빠져들게 된다.

    근대사의 그 엄청난 위인들이 같은 시간, 공간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심지어는 같은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에 근거해 조목조목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슬픈 이는 카프카다. 그는 1년 내내 청혼 편지만 썼다. 세계적 소설가의 그 간절한 사랑 편지는 참으로 허접하다. 아, 그토록 위대한 이들도 사랑에 빠지면 이토록 초라해진다.

    세기말의 문화사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거꾸로다. 이 책을 읽으면 세기말의 문화사를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마구 솟아난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그나저나 침 한 번 진하게 바른 홍상수 감독은 괜찮은 걸까? 너무 세게 바른 건 아닐까?)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어린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어둡고 좁은 박스가 답답했던 걸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박스에서 탈출하려 몸부림친다. 종이 박스 틈새를 뚫고 머리를 내민 고양이 눈에 보이는 새로운 장면들. 작은 다리와 큰 눈을 가진 새끼 고양이는 이제 막 우주라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동의한 적도, 계약서에 사인한 적도 없이 태어나는 곳.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낯선 곳이다. 나와 조금만 다르게 생겨도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고, 나와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려 하는 세상. 태어나기 전 누군가 귀띔만 해주었다면 우리 모두 강력하게 거부했을 것이다. 괜찮습니다라고. 굳이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연과 행운에 따라 정해지는 운명. 확률적으로 재벌 2세보다는 언젠가 구조조정당해 치킨집을 열어야 하는 미래. 알렉산더 대왕도, 나폴레옹도 아닌, 숨 멈추고 몇 년 후면 나라는 자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평범한 인생. 태어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태어났다. 그리고 놀랐다. 아무 준비도 없이 태어났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세상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이라면 모두 한 번쯤은 던져본 질문들. 하지만 우리의 호기심은 점차 사라져버린다. 신기한 것이 당연해지고 낯설던 곳이 익숙해진다. 나이 먹은 고양이는 하루 종일 구석에 웅크려 자고, 어른이 된 우리는 하루 종일 구석에 웅크려 컴퓨터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세상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기에 “나를 좀 즐겁게 해주세요!”라며 울부짖는 우리. 신비와 경외심이 아닌 짜증과 지루함으로 가득한 세상.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한심하고 재미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인 카롤로 로벨리. 세계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 중 한 명인 그는 동시에 고대 그리스 철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150장도 되지 않는 그의 신간 ‘모든 순간의 물리학’. 황당할 정도로 짧은 그의 책은 우리에게 다시 신비함을 가르쳐준다. 우주는 왜 존재하는 걸까? 공간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과거는 기억하지만 미래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일까? 양자역학, 공간 입자, 블랙홀 등 총 7개의 주제에 걸쳐 가장 최근에 소개된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소개한다.

    무한의 우주에 비교하면 무의미해지는 나라는 나약한 존재. 하지만 그 무한의 우주를 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혼자 읽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책. 한 장을 넘기면 넘어간 그 한 장이 벌써 그리워지는 책.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 지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권해보고 싶은 책. 서로를 기억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기에 더 이상 차갑고 무의미하지만은 않은 우주. 이 우주에서 함께 사는 모든 이에게 로벨리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고양시청 앞 헌책방에서 ‘고양 지명 유래집’이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거기에는 신도시 개발로 지명의 유래가 되는 풍경을 잃어버린, 그래서 들려준다는 게 무의미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일산에 사는 소설가로서 나는 그게 제일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여긴 이야기가 없는 도시라는 것. 이런 곳에서도 단지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이야기가 생겨날까? 그런 의문을 품고 산 지도 벌써 이십년이 넘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호수공원을 걷다가 본 나무들이었다. 나무들에 걸린 팻말에는 출생, 결혼, 회갑 등을 기념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1년쯤 지난 뒤, 나는 호수공원과 그 주변의 거리를 배경으로 ‘세계의 끝 여자친구’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그리고 잡지에 발표하기 전, 호수공원 근처 아람누리도서관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이 소설을 낭독할 기회가 생겼다. 도서관에서 나오는데, 허허벌판에 나무 한 그루 심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산에는 이야기가 무척 부족하다. 그러니 매주 찾아가는 근처 서점의 매대에 놓인 ‘호수공원 나무 산책’이라는 책이 얼른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하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일산의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본 나무들을 관찰한 기록이다. 껍질의 형태, 입의 모양, 꽃잎의 특징 등을 적어놓긴 했지만 글쓴이 김윤용씨는 전공자가 아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예컨대 호수공원의 벚나무가 얼마나 빨리 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몇번이나 벚나무, 왕벚나무, 산벚나무를 구분하기 위해 관찰했지만 여전히 나는 잘 구분하지 못한다. 나무에 이름표가 붙었는데도 왕벚나무와 산벚나무의 특징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꽃과 잎이 나는 걸 확인하고 싶었는데 꽃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전공자라면 이런 문장을 쓰지는 않았으리라. 덕분에 이런 의문이 든다. 이분은 왜 이렇게 벚나무를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애당초 이분은 왜 그렇게 걸어야만 했을까? 왜 나무들의 이름을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걸까? 책에는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나 “2013년 어느 날 나무가 내게 다가왔다” 정도로만 나와 있다. 대개는 “호수공원 사자상에서 아랫말산을 10여 오르면 회화나무 옆에 음나무 한 그루가 굵고 크게 자라고 있다” 같은 문장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글쓴이가 어떤 분인지 알 것 같다.

    멀리,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불쑥불쑥 치밀 때도 있었다. 그땐 멀리 가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시절도 이제 모두 지나고 십여년이 넘게 나는 같은 공원을 걷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이 공원 곳곳에 추억이 남았음을 본다. 하지만 누군가 지금 뭘 보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감주나무를, 고광나무를, 혹은 회화나무를 본다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7월 둘째 주의 휴가특집 2회도 기대해 주십시오. 주제는 '여름을 시원하게 만드는 단 한 권의 소설'. 신작 소설로만 5권을 추천합니다. Books와 함께 서늘한 7월을 시작하시길.


    어수웅·Books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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