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끝나면 친구들이랑 학교 앞에서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 통 마시고, 노래방 갔다가 당구 한 게임 치는 게 일상이었죠." 2013년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양모(30)씨는 학창 생활을 이렇게 회상했다. '술 마시고 노래하는' 분위기는 서울의 대학가 어디나 비슷하다.
하지만 술집과 프렌차이즈 카페, 음식점, PC방 등 유흥 상업 지역이 밀집한 고려대 캠퍼스 일대가 앞으로는 청년 창업 공간, 저렴한 주거 공간 등이 있는 '캠퍼스타운'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고려대는 2020년까지 성북구 안암동 5가 103-25번지 일대(17만1290㎡)에 청년 창업 지원 센터와 청년 창업 공간, 청년 임대 주택 등을 지어 '창조경제 캠퍼스타운'을 만든다. 이를 위해 시는 고려대 주변 캠퍼스타운 조성에 1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고려대는 학교 소유 부지(안암동 5가 51-3번지·약 67억원)를 제공하고, 민간 투자로 17억원을 유치해 창업센터·스타트업카페·다목적강의실·지역협력센터·스튜디오 등이 있는 창업지원센터 '안암동 π-ville'도 조성할 계획이다. 센터 운영비는 시에서 지원한다.
시와 고려대는 또 대학 주변의 빈 점포나 허름한 반지하 공간을 리모델링해 '아차공간(아버지 차고)'을 조성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차고'에서 글로벌 기업 창업을 시작했듯이, 청년들에게 창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창의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미국 MIT의 경우 캠퍼스 주변에 창업·일반 기업이 들어와 있어 이 공간이 청년 창업·일자리로 이어지지만, 서울의 대학은 이런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대학 졸업 후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까지 가서 창업하는 실정"이라며 "대학과 가까운 곳에서 청년들이 창업 활동을 해야 전문가인 교수들의 도움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로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대학가 상권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고려대 캠퍼스타운이 조성되면 예술 장터 운영·캠퍼스 관광 개발 등을 통한 청년문화거리가 생기고, 푸드트럭존·아침 시장 등을 들여서 지역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기존 상업 시설이 철거되는 것이 아니다"며 "캠퍼스 주변에 청년 창업가가 몰리고, 이로 인해 주변 상권도 덩달아 활성화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고려대 주변의 낡은 고시원이나 여관·모텔을 셰어하우스로 리모델링해 대학생 등 주거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주거 약자에게 지원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1인 기업인을 위한 사무·주거 혼합형 임대주택 '도전숙(도전하는 사람들의 숙소)'도 조성할 예정이다. 시는 또 지역민을 위해 학교 도서관을 개방하고, 학교 부설주차장을 야간에 개방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52개 대학가 가운데 캠퍼스타운 조성 시범사업에 가장 적합한 곳에 대해 용역을 했다. 그 결과 지하철역과 가까운 역세권이고, 대학의 의지도 큰 고려대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1520억원을 투자해 고려대 주변처럼 캠퍼스타운 10곳을 더 조성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은 대학만 52개가 있을 정도로 청년 인재가 들끓는 도시"라면서 "청년들이 대학 시절부터 창업의 꿈을 키우고 골목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서울 대학가를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