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향연] 내 안에 존재하는 아이히만

조선일보
  • 정미경 소설가
    입력 2016.06.27 03:03

    유대인 600만 학살한 아이히만, 바그너 듣던 가정적인 남자
    '평범한' 惡은 시공초월해 도처에…
    가습기 살균제 치명성 알면서 계속 판매한 기업가들
    그들이 있는 이곳이 디스토피아

    정미경 소설가 사진
    정미경 소설가

    올해 들어 사람들이 갑자기 더 악해진 것일까. 연일 일어나는 엽기적 사건들로 세상이 온통 악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터질 때면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답 없는 질문을 마주하곤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진 지는 좀 되었다. 이 문제의 추이는 좀 복잡하다. 제품이 처음 나온 지 이십 년이 넘었다. 희생자가 나오기 시작했을 땐 이미 엄청난 양의 제품이 팔려나간 후였다. 치명적인 폐 손상을 입은 어린아이, 임산부들이 까닭도 모른 채 아주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후였다. 가장 나쁜 건 이 제품의 독성을 제조사 측에선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종의 화학 살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있으나 그들은 죽지도 않았고 사용한 살균제의 빈 통을 여태 보관하는 치밀함도 없었기에 보상받을 길은 전혀 없다 한다.

    직접적인 사망자가 발생한 이 사건과는 좀 다르지만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폴크스바겐 사태다. 배출가스 양과 연비를 속였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더 놀란 것은 그게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성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나라별 대처 방식은 꽤나 복잡해서, 미국엔 12조원을 보상하면서 한국엔 배상을 안 하겠단다. 한국에선 관련법 제정 이전의 일이라 법률상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태 앞에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배출가스 양을 조작한 거라면 그 피해자는 누구인가. 만약 폴크스바겐이 배상을 한다면 그 배상금은 차량 소유주가 받아야 하는 것인가. 경유차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초미세 먼지를 너나없이 마셔야 한다면 그 돈은 대기환경 개선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유독 까칠한 사람인가. 하지만 내가 폴크스바겐 차량을 소유한 것도 아니니 신경을 끄고 지나가면 그뿐인 일일까. 어느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초미세 먼지 농도는 오래지 않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불 보듯 뻔하며 그 피해 규모는 가습기 살균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기업들의 뱀장어 같은 대응 방식을 보고 있자니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그 자신 수용소 생활을 했었고 미국으로 망명해 살던 그녀는 오랜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600만 명 가까운 유대인을 그들 용어로 '최종 해결'했던 총책임자, 남미에서 체포돼 예루살렘 전범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을 직접 보기 위해서. 말 그대로 '인간 백정'이었던 그는 주장했다. 자신은 유대인을 단 한 명도 직접 죽이지 않았다고. 다만 당시의 법을 따랐을 뿐이라고. 수용소에서의 일과가 끝나면 바그너를 들으며 가족과 저녁 시간을 보낸 남자, 너무도 평범한 악의 실체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책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붙였다. 하지만 악의 평범함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지난 세기로 시간 여행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이히만은 시공을 초월해 도처에 널려 있으니.

    2차 세계대전 후 유대 민족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에 동조했던 독일인들과 놀랍도록 닮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퍼붓는 폭탄을 불꽃놀이처럼 즐기는 그들과 아이히만은 어떻게 다른가. 독성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판매한 기업가들은 아이히만과 어떻게 다른가. '이제 폴크스바겐은 망했구나' 생각한 나 같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크게 비웃듯 회사 측 파격 할인 행사에 폭풍 구매로 화답한 소비자들은 아이히만과 어떻게 다른가. 이 기업가들은 제 손에 직접 피를 묻힌 살인자보다 덜 악한가. 한나 아렌트가 일깨우고자 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아이히만'이었을 것이다. 선과 악을 가르는 경계는 우리 각자의 심장을 지나고 있다는 것도.

    희생자로서의 자신에게는 예민하고 방관자인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태도. 타자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아무 생각 없음. 디스토피아는 어디 먼 곳이 아니라 이 평범한 악들의 카르텔 가운데서 축조된 우리의 거주지, 바로 여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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