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대국 일본에서 출판 산업이 쪼그라들고 있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가 집계한 2015년 일본 출판 산업 매출은 1조5220조엔으로, 정점을 찍은 1996년(2조6563억엔)에 비해 40% 넘게 내려앉았다.
그런데 쓰타야쇼텐(
屋書店)이란 회사는 예외다. 147년 된 마루젠(丸善), 122년 된 유린도(有隣堂)처럼 100년 넘은 대형 책방이 수두룩한 일본에서 1985년 창업한 쓰타야는 '후발 주자'다. 이 후발 주자가 최근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출판 산업 전체가 휘청대는 와중에도 창업 30년 만인 2013년 연매출 1212억엔을 달성해 서점 중 선두로 나섰다. 수십년간 오프라인 서점 1등을 지킨 70년 역사의 기노쿠니야(紀伊
屋·1086억엔)가 2등으로 밀려났다.
21일 사이타마시 JR우라와역. 도쿄 도심에서 지하철로 1시간 거리다. 개찰구를 나오면 곧바로 책방으로 들어간다. 책방 안은 보통 서점과 구조가 달랐다. 종류별로 책을 쭉 꽂아놓은 건 다른 서점과 마찬가지지만, 입구에 큼직한 테이블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한참씩 편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우선 읽어보고 사든지 말든지 결정할 심산으로 책을 펼쳐든 중년 남자가 있는가 하면, 책 사볼 생각 없이 노트북 펼쳐놓고 과제에 골몰하는 대학생도 있었다.
또 스타벅스와 문구점, 구두 수선 용품 코너 등도 있었다. 어디까지가 책방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가게인지 문턱 구분이 없었다. 스타벅스 옆에는 아예 책장 앞에 소파를 쭉 이어놨다.
이 점포는 작년 11월 문 열자마자 동네 명소가 됐다. '이래도 장사가 될까' 싶은 매장 구조가, 역으로 평소에 책 안 읽던 손님까지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던 나나미(22)씨가 "여기 오면 편해서 오가는 길에 자주 들른다"며 "평소 그다지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닌데, 자꾸 오다 보니 재미가 생겨 소설책 몇 권을 샀다"고 했다. 쓰타야의 모기업인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의 마스다 무네아키(增田宗昭·64) 사장은 시사주간지 도요게이자이 기자에게 "이 점포에서만 매달 1000만엔씩 현금이 들어온다"고 했다.
쓰타야가 '고객 체류형 서점'을 만들어 히트를 친 것은 우라와역 점포가 처음이 아니다. 쓰타야는 2011년 도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에 1만3200㎡(약 4000평) 부지를 사들인 뒤 아담한 2층 건물 세 채를 띄엄띄엄 지었다. 근처는 덴마크·이집트 대사관 등 외국 공관이 많고 숲이 많은 한적한 고급 주택가다. 업계 사람들은 "서점을 열려면 통행량이 많은 전철역이나 번화가에 내야지,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은 동네에 책 사러갈 사람이 있겠느냐" "땅값 뽑으려면 건물을 높이 올려야지 2층 가지고 되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서점은 히트를 쳤다.
이 점포는 '북 컨시에르지' 개념을 도입했다. 컨시에르지는 원래 고급 호텔에서 손님들한테 맛집도 추천해주고 소소한 심부름도 해주는 직원이다. 쓰타야쇼텐 다이칸야마점은 문학·여행·건축·음식·음악·자동차 등 6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직원들을 뽑아 '북 컨시에르지' 직함을 줬다. 이들이 손님 취향과 수준에 맞춰 추천서를 골라주고 "제가 읽어보니 이렇더라"고 독후감도 들려준다.
'책방에선 책만 판다'는 고정관념도 깨뜨렸다. 이곳은 여행 코너에 이탈리아 미술사 책, 이탈리아 가이드북, 여행용 트롤리, 여행용 일기장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요리 코너에 가면 레시피 책과 그 책에 나오는 자연산 식초·유기농 된장을 함께 살 수 있다. 소설책과 시집이 꽂힌 문학 코너는 서점이라기보다 도서관에 가깝다.
쓰타야쇼텐은 이런 식으로 다이칸야마에서 성공을 거둔 전략을 오사카, 사이타마, 하코다테, 쇼난 등 일본 전역에 확대하고 있다. 고급화 전략만 구사하는 게 아니다. 지역과 점포 특성에 맞춰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 체인과 협업 점포도 내고, 에어비앤비와 제휴해 쓰타야 점포에서 에어비앤비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캠페인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