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주택가는 대략 20년 주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시작은 괜찮았다. 40년 전인 1970년대, 논·밭이던 변두리에 대규모 구획정리사업이 펼쳐지면서 1~2층 단독주택이 들어섰다. 이른바 '집 장수'들 작품이다. 작은 집은 서민층, 좀 큰 집은 중산층이 살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쌍문동 수준은 아니지만, 이웃 간 소통도 그런대로 이뤄졌다. 20년 전인 1990년대, 건축업자들이 이 집들을 허물고 4층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올렸다. 노태우 대통령의 '200만호 건설' 공약을 위해 정부가 건폐율·용적률·일조권과 주차장 기준을 대폭 완화했기에 가능했다. 입주자는 거의 서민인데 날림 공사가 많아 누수·균열·소음과 주차 전쟁으로 늘 시끄러웠다. 이웃 간 정(情)은커녕 고성이나 오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선지 이명박·오세훈 시장의 뉴타운 정책에 많은 시민이 환호했다. 이미 슬럼화 단계에 온 동네를 일신하고, 재개발·재건축의 한계도 해결할 묘수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기가 위축되고, 5년 전에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600개 넘는 조합과 추진위원회는 패닉에 빠졌다. 박 시장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지역공동체를 붕괴시키는 뉴타운과 재개발을 수습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출구 전략' 수립이다. 그는 "뉴타운을 해제하면 마을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고유의 장점을 살려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서울시는 "주민들이 뉴타운·재개발을 정말 원하는지 실태부터 조사하겠다"며 조례를 만들어 사업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이어 "불합리한 조합 운영으로 인한 재정 부담이 주민에게 전가돼선 안 된다"며 조합 운영 실사에도 나섰다. 이렇게 수년간 사업을 지연시키자 건설회사들이 손을 뗐고, 주민들은 피로감에, 조합들은 내분과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 사이 동네는 조각났다. 장위뉴타운을 보자. 15개 구역 가운데 일부는 이주·철거·공사 중이고, 일부는 아예 해지됐다. 나머지 구역들은 사업 계속이냐 포기냐를 놓고 주민 갈등만 심화되고 있다. 해지된 13구역의 경우, 순식간에 다세대 주택 80채가 신축됐거나 건축되고 있다. 뉴타운의 목적인 난개발 방지도, 박 시장의 목표인 공동체 재건도 아닌, 90년대의 실패를 재연 중인 것이다. 향후 이 일대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조합원들은 "장위동은 사업성이 높은 곳 중 하나였다. 박 시장만 아니면 벌써 다들 입주했을 것"이라며 억울해한다.
서울의 수백 곳 뉴타운·재개발 구역 주민 대부분이 "구체적 대안도 없이 '이명박·오세훈 지우기' 차원에서 나온 '뉴타운 죽이기'로 동네만 골병들었다"고 하소연한다. 서울시 간부도 "4년 전부터 주민 뜻대로 추진이나 해제를 결정토록 했지만 아직도 오도 가도 못하는 곳이 많다"며 "우리도 답답하다. 어려운 일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시는 최근 용역을 하나 발주했다. 이름은 '뉴타운 해제 지역 등 저층 주거지 관리 및 재생 모델 개발'이다. 조합들은 "내년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박 시장이 모델 몇 가지 던지고 뚜껑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뉴타운 출구 전략'으로부터의 출구 전략 아니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