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판 서적을 출판·판매하다 중국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온 홍콩 서점상이 "중국에서 공권력에 의해 납치·감금돼 24시간 감시를 받았으며 TV에서 허위자백을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아닌 홍콩에서 납치당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홍콩 서점 주인 실종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 당사자가 중국에 의한 납치와 허위자백 강요 사실을 폭로한 것은 처음이다.

홍콩에서는 작년 10~12월 출판·서점상 5명이 잇달아 연락이 두절됐다. 중국은 지난 2월 이들이 중국에서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중 4명은 올 3월 이후 귀환했는데, 사건 진상에 대해 침묵하거나 '자발적으로 중국에 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홍콩 야당 등은 "이번 폭로가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위반"이라며 홍콩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反)중국 시위가 확산될 조짐도 나오고 있다.

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 점장인 람윙키(林榮基·61)씨는 16일(현지 시각)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년 10월 24일 중국 선전(深圳)에 갔다가 중앙특별안건팀(中央專案組)에 연행돼 눈을 가린 채로 1100㎞ 떨어진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로 이송됐다"고 말했다. 중앙특별안건팀은 중국 공산당이 당 차원에서 구성하는 특별조사팀으로 각 임무에 따라 반(反)부패 부처 간부와 고위 경찰관, 군 장성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람윙키는 "5개월간 독방에 감금된 채 변호사 등 외부와 소통이 금지됐다"며 "조사요원들은 '서점 고객 명단을 넘겨주면 석방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자회견 동기에 대해 "권위주의 권력에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기 위해 나왔다"면서 "지난 2월 중국 TV에 나와 불법 서적 밀반입 혐의를 자백한 것은 중국 당국이 준 대본대로 읽은 것"이라고 했다.

그를 비롯해 코즈웨이베이 서점 리보(李波·65) 대표, 마이티커런트 출판사 구이민하이(桂民海·51) 대표와 뤼보(呂波·45) 총경리, 청지핑(張志平·32) 매니저 등은 지난해 10월 이후 차례로 연락이 두절됐다가 구이씨를 뺀 4명은 올해 3월 이후 한 명씩 홍콩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 내 권력 암투나 여자 문제 등을 다룬 책들을 출판·판매해왔다.

람윙키씨는 이날 회견에서 "서점 대표 리보씨로부터 (자진해서 중국에 간 게 아니라) 홍콩에서 (중국 당국에) 연행됐다"는 말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실종됐던 리보씨는 지난 3월 홍콩에 나타나 "구이씨와 관련해 자진 조사를 받았고 절대 납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람윙키씨의 이날 폭로 이후에도 "나는 중국에 납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공민당 등 홍콩 민주파 정당들은 "람윙키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중국이 일국양제 원칙을 파기한 것"이라며 홍콩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제임스 토(塗謹申) 민주당 의원은 "중국 당국이 사건 전모를 공개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안전에 대한 홍콩인들의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정부 대변인은 "람윙키의 주장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반(反)중국 시위도 시작됐다. 17일 주(駐)홍콩 중국연락판공실 앞에서는 시민단체 회원 수십명이 시위를 벌였다. 회원들은 "납치 중단" "언론 자유와 출판의 자유 보장" 같은 구호를 외친 뒤 람윙키씨의 기자회견 내용이 실린 신문 등을 중국연락판공실 안으로 던졌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으면서 '50년간 고도의 자치와 사법 독립, 언론 자유 등을 보장한다'는 일국양제 원칙을 천명해왔다. 이 원칙에 바탕한 홍콩 기본법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홍콩에서 홍콩 시민을 체포하거나 조사할 권한이 없다. 홍콩 범민주파의 앨런 렁 입법회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사람이 시내 한복판에서 몰래 끌려간 것이라면 일국양제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온라인판에 "람윙키의 발언은 증거가 많지 않다. 홍콩과 관련해 일국양제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설을 올렸다가 한 시간 만에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