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의 르네상스人] "신문·책 읽어야 삶을 디자인합니다, 이게 R&D죠"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6.06.15 03:00 | 수정 2016.06.15 04:57

    [외화번역보다 강의 더 바쁜 이미도]

    번역 아닌 창조적 상상력 話頭로… 주 1회 초대받는 일급 강사
    최근엔 '독보적 영어책' 펴내… 2시간씩 신문 읽는 '활자 중독자'

    외화 번역가로 친숙한 이미도(55)씨의 14일 일정은 충남 천안 삼성인력개발원의 오전 8시 강연이 시작이었다. 90분 강연을 마치고 KTX편으로 상경한 그가 서울 무교동 커피 전문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10분. 집이 부산 해운대인 그가 서울 작업실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정체성은 작가. 스스로를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샤이 애니멀(Shy Animal)'로 부르는 그는 "익숙한 집을 떠나야 내 머릿속 수줍은 뇌도 기어 나오고 싶어 한다"면서 "부끄러움 많은 성격이지만, '익명의 섬'인 이곳에서는 창의력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번역하고, 책을 쓰고, 책을 펴내고, 강연을 하는 사람이다. '반지의 제왕' '쿵푸팬더' 등 23년간 520편의 외화 번역, 이번에 직접 출판사까지 차려 펴낸 '독보적 영어책'(뉴 刊) 등 13년간 9종 12권의 책을 썼다. 외화 번역과 작가로서의 이미도는 익숙하지만, 몇 년 전부터 주 1회꼴로 초대받는 '일급 강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흥미로운 대목은 강의 주제. 외화 번역이나 영어 교육이 아니라, '창조적 상상력'이 화두(話頭)다. '르네상스人'이 관심을 가진 지점도 이 대목이다. 이날 아침 삼성에서의 강의 제목도 '픽사(Pixar)에서 창조적 상상력을 훔쳐라'였다.

    "창의력의 바탕은 상상력이고, 상상력의 바탕은 호기심이죠. 저는 이 놀이가 늘 즐거웠어요. 제게 이 놀이를 가장 즐겁게 만들어준 게 영화와 책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모방하고 따라 하지만, 아이들은 왜 제각각 즐거운지 이유를 아세요? 천진난만한 호기심에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Think Different)"

    신체 나이는 50대 중반이지만 호기심은 10대라는 그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 이야기를 꺼냈다. E.T.는 세 캐릭터의 융합과 통섭이 빚은 르네상스인이라는 것. 보기만 해도 웃음 나오는 주름 많은 강아지 퍼그,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그리고 감성과 공감의 상징인 미국 시인 칼 샌드버그(1878~1967)다. 32년 전 인공지능을 스크린에서 예언했던 제임스 캐머런의 '터미네이터'(1984), 칠판에 '내 힘들다'고 써서 학생들을 긴장시킨 뒤 "거꾸로 크게 읽어봐"(다·들·힘·내!)라고 외쳤던 휠체어 영문학자 고 장영희 교수 등 그가 꺼내는 사례는 종횡무진. 매혹적 마성(魔聲)과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둔 탁음(濁音)이지만, 그의 강연이 환호를 얻는 이유다.

    이미도 외화 번역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모든 곳이 작업실이다. 글 쓰고 번역하고 강연 원고 만드는 대부분의 작업이, 카페에서 이뤄졌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반대말은 재미없게 사는 것. 이미도씨는“재미있으려면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책과 영화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이 상상력의 전도사는 신문 1면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를 샅샅이 훑는 종이신문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매일 2시간 30분을 신문 읽기에 꼬박 바친다는 것. 종이신문 기자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 시대착오는 아니냐고 모르는 척 물었다. 그는 고전 '백설공주'와 '거울'의 비유를 들었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의 왕비 질문에 대답하는 거울은 현대의 검색 엔진이지만, 결국은 사색(思索)하는 백설공주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 그는 'Shallow Thinking'이란 표현을 썼다. SNS와 스마트폰에만 집착하면 파편적이고 얇은 사유에 그치지만, 이 조각들을 꿰어 'Deep Thinking(깊은 사유)'을 원한다면 종이책과 종이신문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번 책 '독보적 영어책'에 쓴 형용사 '독보적'은 "감히 남이 따를 수 없는"이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읽는 재미의 독(讀), 보는 재미의 보, 쌓는 재미의 적(積)이다. 독이나 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는 억지 아니냐고 묻자, "이런 지적과 비난이 얼마나 상상력을 위축시키는지 아느냐"면서, "'아재 개그'를 구사하면서 얼마나 많은 아저씨들이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해졌는지 생각해보라"며 웃었다.

    이 '아재'의 세계관은 독일 유물론자 포이어바흐의 'You are what you eat'을 빗댄 'You are what you read'. 의역하면, '당신이 읽는 책을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마'이다. 그가 믿는 창의적 상상력의 첫 단추는 읽기다. Read and Design. 읽어야 삶을 디자인할 수 있다. 그는 이를 'R&D'라고 명명했다. 이번 '아재 개그'는 그리 밉지 않았다.

    [인물 정보]
    외화 번역가 이미도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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