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이봉창 의사 용산 집, 철거 지켜볼 건가

조선일보
  • 윤주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입력 2016.06.15 03:02

윤주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윤주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순국선열의 정신을 기리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이름 없이 싸우다 순국한 애국지사가 많고, 저평가된 애국지사도 적잖다. 그 대표적인 분이 이봉창 의사이다. 우리의 항일운동 역사상 유일하게 일왕을 직접 처단하려 했던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1월 8일 오전 11시 44분, 일본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궁성으로 돌아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이봉창 의사는 폭탄을 던졌으나 비껴가 실패로 끝났다. 일본인들이 현인신(現人神)으로 추앙하는 일왕을 제거하고 조선의 독립 의지를 천명하고자 죽음의 길로 뛰어든 그는 비록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잠자고 있던 우리의 독립 의지를 깨웠고, 이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를 비롯한 활발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일본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 중 가장 '대역죄인'으로 꼽는 이가 안중근 의사도 윤봉길 의사도 아닌 이봉창 의사다.

그럼에도 이 의사는 건국훈장 심사에서 1등급이 아닌 2등급을 받았다. 성공 여부에만 초점을 두고 평가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봉창 의사가 살던 서울 용산 집 자리에 곧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다. 이 의사는 용산에서 태어나 25세까지 지냈다. 생가 위치는 알기 어렵지만 성장한 집은 효창동 118번지로 확인됐다. 11세부터 일본으로 가기 전인 25세까지 생활한 집이다. 이곳이 용산 재개발 제4구역에 포함됐다. 이 의사의 기념 조형물은 효창공원 인근에 있는 동상이 전부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에 있던 생가 표지석은 잘못된 장소에 설치해 철거됐다.

이 의사 기념사업은 미미하다. 미혼이라 후손이 없는 데다 '천황을 시해하려 한 대역죄인'이어서 방계(傍系)도 혹독한 탄압으로 몰락했다. 게다가 80년 넘게 지나도록 후손들에게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방이 아닌 서울 태생이어서 '내 고장 인물' 홍보 대상도 안 되고 있다.

우선 용산구부터 지역의 자랑인 이 의사에 대해 더는 무관심해선 안 될 것이다. 아파트 단지 설계를 수정해서라도 바로 그 자리에 복원되도록 나서야 할 것이다. 이 의사의 거사는 독립운동 파급효과로 볼 때 큰 성공을 거둔 의거이다. 후손으로서 순국선열의 넋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죄를 더는 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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