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시집… 죽음의 長詩

    입력 : 2016.06.13 03:00

    [새 詩集 낸 김정환·김혜순 시인]

    내 몸에… - 개인·사회 '울화' 관통
    죽음의… - 투병 체험 담은 49편

    김정환, 김혜순 시인 사진
    김정환, 김혜순.
    1980년대 이후 한국 시의 내용과 형식에서 각각 혁신(革新)을 대표해온 남녀 시인이 나란히 새 시집을 냈다. 사회 변혁의 꿈을 노래해온 김정환(62) 시인이 새 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문학동네)을, 시학(詩學) 혁명을 실험해온 김혜순(61) 시인이 새 시집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을 각각 펴냈다. 두 시인은 각기 다른 시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번엔 똑같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죽음의 정서를 탐구했다.

    김혜순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은 지난해 투병 체험을 담은 시 49편을 담고 있다. 시인은 "전철에서 어지러워지다가 승강장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뇌신경계의 질병으로 인해 온몸이 감전(感電)된 듯한 고통에 시달려 병원에 갔지만 때마침 터진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시인은 죽음에 인접한 듯한 개인 체험과 함께 세월호의 비극을 비롯한 공동체의 죽음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죽음을 선취(先取)한 자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것.

    시인은 '지하철 타고 가다가 너의 눈이 한 번 희번득하더니 그게 영원'이라며 쓰러진 자신을 '너'로 대상화했다. '너는 죽으면서도 생각한다. 너는 죽으면서도 듣는다'라고 실신했을 때를 회상한 것. 시인은 '너'가 되는데, 이번 시집의 화자는 다른 목소리다. 그 화자는 '너'를 보며 '저 여자는 죽었다'고 한다. 그 화자는 '너'를 보며 '저 여자'가 다니던 직장을 향해 '몸' 없이 간다고 하더니, '지각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살지 않을 생을 향해 간다'고 중얼거린다. 죽음도 아랑곳하지 않을 생업(生業)의 굴레에 진저리를 치는 것. 시인은 세월호의 비극을 추모한 시에서 바다를 '까만 거울'이라고 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이 까만 거울 속에 있고, 그 누가 이 거울물 찍어 우리의 얘기를 쓰게 될까/ 글을 쓸 잉크가 왜 이리 많을까'라는 것. 시인은 "이 시집(49편의 시)을 한 편의 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정환의 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에서 중심을 차지한 작품은 장시 '물 지옥 무지개-세월호 참사의 말'이다. 시인은 '이들의 죽음이 있다. 이들의 죽음에 뜻이 없다면 살아남은 생에 무슨 뜻이 있을 수 있는가, 살아온 생과 살아갈 생에 무슨 뜻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내 몸 안의 온갖 악마들이'라며 공동체 차원의 정화(淨化)를 갈망했다. 희생된 아이들의 영혼이 하늘에 올라갔기에 '여기가 물 지옥, 퉁퉁 불은 무지개 떴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김정환은 '삶이 문학을 구원할 때까지 문학이 삶을 구원할밖에'라며 리얼리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민중 미술을 보며 '나날이 새로운 새벽 찬란과 황혼 장엄 맞으며 우렁차게 근육의 강건한 침묵이 죽음의 진혼일 때까지 깊은 밤 숫자들도 속삭인다'고 변혁의 꿈을 형상화했다. 시인은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할 뿐 아니라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도 풍자와 해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시인의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인 '울화'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시집을 편집한 김민정 시인은 "다 읽고 나면 내가 한 권의 시집을 읽은 것인지 한 편의 시를 읽은 것인지 가물가물 헷갈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