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용 자동차 만든다고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했지만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와서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거였죠."

지난 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다산관. 푸른색 자동차 정비사 복장을 맞춰 입은 2~4학년 학생 10명이 이번 1학기에 공들여 만든 경주용 자동차를 공개했다. 기계공학 전공자들이 중심이 된 이 학교 학생들이 직접 설계해서 만든 것이다. 아직 차체를 씌우지 않아 골격만 앙상한 상태지만, 완성되면 최고 200㎞의 시속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경주차의 성능을 나타내는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4초 중반대로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빠르다.

아주대‘파란(破卵) 학기제’를 통해 경주용 자동차 만들기에 도전한‘포뮬러600’팀의 팀원인 기계공학과 4학년 박병언(24·왼쪽)·정찬식(24)씨가 지난달 새벽 학교 공작실에 남아 자동차 배선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경주차를 완성해 오는 9월 일본에서 열리는 자체 제작 자동차 경연대회인 '스튜던트 포뮬러 재팬'에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팀으로는 유일하다. 제작에 참여한 차수현(24·기계공학과 4년)씨는 "부품 살 돈이 부족할 때마다 팀원들이 단체로 가구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며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라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학기 중에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주대가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파란(破卵) 학기제' 덕분이다. 학생들이 개인이나 팀 단위로 직접 도전 과제를 정하고 이를 수행하면 3~18학점까지 인정해주는 제도다. 학생들이 해보고 싶은 주제를 골라 직접 커리큘럼(교과과정)까지 짠다는 점에서 대학가에선 파격적인 실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파란 학기제를 신청한 학생들에겐 1학점당 10만원씩 지원금도 준다.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김동연(59) 총장이 작년 부임한 후 "학생들에게 도전과 시행착오의 기회를 주자"며 만들었다. 이번 학기에 120명의 학생이 42개 도전 과제를 정해 참여했고, 총 830학점이 부여됐다.

이날 다산관에서 열린 '파란 학기제 결과 발표회'에서 학생들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달성한 도전 과제의 결과물들을 발표했다. '패션 브랜드 론칭(launching·출시)'을 도전 과제로 삼은 미디어학과 4학년 김현수(26)씨는 이번 학기에 '마스터 넘버'라는 온라인 의류숍을 열고 주문 제작 방식으로 한 달 6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한 의류업체가 관심을 보여와 협력도 모색하고 있는 단계다. 김씨는 "창업을 준비하느라 이미 4학기를 휴학했고, 자퇴를 고민하던 상황에 파란 학기제가 도입됐다"면서 "파란 학기제 덕분에 15학점을 인정받고 사업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화콘텐츠학과·미디어학과·국문과 학생들로 구성된 '웹드라마 제작: 시나브로'팀이 만든 15부작 드라마 '네가 연애를 아느냐'는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2만회 넘게 재생됐고,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이 밖에도 산림 방재 활동에 쓸 수 있는 '드론 개발', 'MLB(미국 프로야구) 취재 및 다큐멘터리 제작' '무인자동차 차량 설계' 등 다양한 주제로 학생들이 참여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의약품·의류·보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학생들은 결과 발표회에 참석하는 대신 동영상으로 진행 상황을 전해왔다.

모든 학생이 도전 과제를 달성한 것은 아니다. '수화(手話)로 청각장애인 심리 상담해주기'에 도전했던 심리학과 3학년 김진섭(23)씨와 2학년 손병진(23)씨는 "일주일에 15시간씩 공부했지만 수화를 완벽히 구사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씨는 이날 결과 발표회에서 수화와 구화(口話)를 섞어가며 "청각장애는 신체적 장애가 아닌 '사회적 장애'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서비스가 갖춰진다면 장애인들이 한결 편리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