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미 공인 女전사

    입력 : 2016.06.08 03:00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탈진해 쓰러지는 병사가 속출했다. 마비된 다리를 움켜쥐고 분을 못 이겨 엉엉 울기도 했다. 후임병들을 부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규정에 어긋난다. 사이렌 울리며 달려온 구급차에 맡기고 달렸다." 미군 EIB(Expert Infantryman Badge)에 도전했던 카투사 병사 체험담이다. '우수 보병 휘장'을 뜻하는 EIB는 최정예 전투원을 선발하는 일종의 자격 시험이다. 미군이 '지옥 테스트'라고 부를 만큼 혹독하다.

    ▶2분 안에 팔굽혀펴기 40번과 윗몸일으키기 50번, 완전군장 하고 3시간 안에 20㎞를 주파하는 급속 행군, 40발 중 36발 넘게 명중시켜야 하는 사격…. 이건 예비 시험이다. 통과하면 폭발물 설치부터 응급처치까지 본시험이 일주일 이어진다. 41개 종목에서 하나라도 불합격하면 탈락이다. 합격률이 15%를 밑돌 수밖에 없다. 우리 육군도 작년에 '최정예 전투원' 제도를 시작했다. 20㎞ 급속 행군을 비롯한 25개 테스트를 닷새 치러 모두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첫 평가에선 96명 중 6명만 합격했다.

    [만물상] 한·미 공인 女전사
    ▶야전 군인에게 '최정예 전투원' 배지는 큰 영예다. 남녀 시험 기준이 똑같기에 여군 합격자라면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보병 소대장 정지은 중위는 작년 2기 테스트에서 배지를 달았다. 열흘 전엔 미군 EIB까지 따내 양국 군이 공인하는 여군 최초이자 최고 전투 요원이 됐다. EIB를 여군이 단 것은 아직 미군에도 없는 일이다. EIB는 보병 테스트인데 미군이 올해에야 여군에게 보병 병과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정 중위는 지난해 출범한 한미연합사단이 올해 한국군 간부에게도 EIB의 문을 열면서 도전 기회를 잡았다. '지옥 테스트'를 앞두고 매일 정확한 자세로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를 200차례씩 했다. 하루 7㎞ 넘게 산악 구보도 했다. EIB 시험에 나선 한국군 50명 중에 21명이 합격했고 여군은 그가 유일했다. 그는 태권도·유도 3단이다. 작년 임관식에선 대통령상을 받았다. 데미 무어가 연기한 여군 전사 'GI 제인'이 따로 없다.

    ▶주한 미군 당국은 정 중위가 세운 기록을 본국 보병학교에 통보해 자극제로 삼겠다고 했다. 그런데 진짜 자극받아야 할 사람들은 가까이 있다. 지난주 육군은 간부 35%가 비만, 26%가 과체중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외쳐 온 '전투형 강군(强軍)'이 무색하다. 정 중위가 기합 소리를 카랑카랑하게 내질러 주었으면 한다. 살찐 육군 간부들 정신 바짝 차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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