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비싼 돈 주고 왔는데… 내 관람 방해하지마!"

    입력 : 2016.06.06 03:00

    [공연장 '관람 방해' 갈등]

    - '수구리' 때문에 '관크' 당했어
    최근 공연 마니아층 뚜렷해지며 "관람 방해당했다" 항의 넘쳐
    방해행동 뜻하는 신조어도 생겨

    - 머리 큰 걸 어떡하라고…
    기침 등 생리 현상마저 눈총… 지나친 민감증은 새 갈등 요인
    "공연장, 公共財란 인식 필요"

    지난 4일 밤, 뮤지컬 '마타하리'를 공연 중인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막 오르기 직전, 2층 안내원이 맨 앞줄로 내려오더니 객석을 향해 돌아보며 신신당부했다. "공연 도중엔 반드시 좌석에 등을 붙이고 몸을 앞으로 수그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사진 객석에서는 앞자리 관객이 등을 수그리면, 뒷자리 관객의 시야(視野)가 제한되고 관람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사전(事前) 공지한 것이다. 공연 전후에 관객들의 항의가 빗발칠 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직장인 A씨는 "왜 이런 공지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훈시하듯 전달해 당황스러웠다. 관람 도중 자세 한번 바꾸는 데도 눈치가 보일 만큼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수구리' '커퀴밭'까지

    요즘 공연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관람 방해 행위'와 이를 둘러싼 민감한 반응이다. 휴식 시간 때 앞줄과 뒷줄 관객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일도 있고, '떠든 사람' 이름을 적듯이 관람을 방해했다고 여기는 관객 자리 번호를 적어서 안내원에게 건네기도 한다. 그 관객에게 주의를 당부해달라는 압력이다.

    공연 마니아들이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하소연이 넘쳐난다. "오늘도 앞줄 '수구리' 때문에 '관크' 당했다" "'시체 관극' 좀 하려고 했는데 '커퀴밭'이었다"는 식이다. '관크'는 '관객 크리티컬(critical·온라인 게임에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때 쓰는 말)의 준말로 '다른 관객으로 인한 관람 방해'를 말한다. '수구리'는 좌석에서 등을 떼고 수그린 채 앉아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행동이다. '커퀴밭'은 '커플 바퀴벌레 밭'의 준말이다. 공연 중 애정 행위를 벌여 주변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는 커플이 많은 상황을 뜻한다. '반딧불'은 공연 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불빛을 노출하는 일이다. "어떤 공연에서 아줌마 관객이 객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관크'를 했다"는 등의 괴담도 나돈다. 반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관람에 집중하는 '모범적인' 관람 태도는 '죽은 사람처럼 공연 관람에만 집중한다'는 뜻에서 '시체 관극'이라고 한다.

    지나친 민감증, 새 갈등 요인?

    관람 방해에 대한 이 같은 지적들은 최근 2~3년 동안 공연 마니아층이 뚜렷해지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일부 관객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관람 문화의 성숙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최근 공연 도중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일은 부쩍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민감증이 지나쳐서 그 자체로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큰 키나 머리, 기침 같은 생리 현상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마저 눈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몸을 움직이다가 조금만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내도 지적을 받는 일이 적지 않다. 공연 중 기침을 하지 않기 위해 암전(暗轉) 때 일부러 관객 여러 명이 헛기침 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현재 관람 방해에 대한 한국의 민감증은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편"이라며 "공연 문화의 소비 패턴이 단체에서 개인 위주로 변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짚었다. 혼자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값비싼 고급 문화를 향유한다'는 인식 때문에 관람을 방해받기 싫어하는 심리가 과도해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관람 방해'의 기준이 제각각 다른 것도 문제를 확산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차명호 평택대 교수(상담심리학)는 "공연장은 '나만의 공간'이라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연극과 뮤지컬 역시 자기 말고도 여러 관객이 존재하는 덕분에 공연이 성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비싼 티켓을 샀으니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만 빠져들다 보면 자칫 불가피한 타인의 행동까지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극단적 심리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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