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 1등 국민, 2등 국민

조선일보
  • 송희영 주필
    입력 2016.06.04 03:20

    구의역 사망한 19세 용역 청년… '2등 국민'서도 가장 낮은 대우
    처지 비슷한 청년들 "친구야 네 잘못 아니다" 울분
    정치가 숨통 터주지 않으면 제2국민의 擧事 터질 수도

    송희영 주필
    송희영 주필
    대한민국에는 두 국민이 있다고들 한다. 1등 국민은 공무원, 공기업 직원, 대기업 정규직과 그 가족들이고 2등 국민은 계약직, 비정규직, 일용직을 말한다. 제1국민·제2국민, A급·B급이라 쉽게 부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갑질 잘하는 갑민(甲民), 갑에 굽실대야 하는 을민(乙民)이 있을 뿐이라고 냉소한다.

    1등 국민은 거대한 조직 안에서 보호받는다. 큰 빌딩에서 편안한 의자, 깔끔한 구내식당을 제공받고 고정급을 보장받는다. 협회, 노조, 조합이 그들의 이익을 지켜준다. 손해 보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국회로 달려갈 수 있다. 언론도 그들의 동향을 주로 보도한다. A급들끼리는 서로 다투다가도 등을 밀어주곤 한다. 세상을 이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운명 공동체 같은 묵계(默契)가 있다.

    2등 국민은 소득만 적은 게 아니다. 연애가 어렵고 결혼을 할 수 없다. 가족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집합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지친 몸을 기댈 소속 단체도 없다. 제1국민이 입장권을 내밀면 들어가는 곳도 제2국민은 몇 시간 줄을 서야 입장권을 살 수 있는 번호표를 받는다. 취직 전선에는 그 번호표조차 못 받는 등외(等外) 국민이 적지 않다.

    고도성장 시대에는 주연(主演)과 조연, 단역들이 함께 어울렸다. 주연, 조연이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에서 아들 딸을 대학까지 보냈다. 한 무대 위에서 같은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는 동지였다.

    하지만 이제 2등 국민들은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뒤에서 정규직에 조명을 비춰주고 의상을 챙겨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땀을 닦아줄 수건과 물병도 준비해야 한다. 반 토막밖에 되지 않는 월급을 거부하면 그렇지 않아도 쪼들리는 부모의 호주머니나 털어야 한다.

    1등 국민과 2등 국민의 충돌이 늘면서 우리 사회의 불안은 한층 커지고 있다. 심상치 않은 징조다. 서울지하철에서 19세 용역회사 직원이 사망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1등 국민의 조직인 서울메트로에서 내려간 낙하산 직원들은 용역 회사에서 월 442만원 정규직을 보장받고 있었다. 그 용역 회사엔 월 200만원, 월 140만원을 받는 사원들이 더 있었다. 사망한 기술자는 2등 국민 가운데 밑바닥이었다. 제2국민 집단은 '친구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하며 제1국민의 조직체를 공격하고 있다.

    2등 국민이 사망하면 금방 '죄 없는 피해자'가 된다. 하룻밤 새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만 당한다'는 공기도 만들어진다. 노란 리본, 포스트잇 딱지 격려가 쏟아진다. 정치인들은 현장을 찾거나 감상에 젖은 댓글로 공기를 뜨겁게 달군다.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근본 대책을 세우는 일은 뒤로 미뤄진다. 그저 애도하며 슬픈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타고난 국민성이 애도와 슬픔을 유독 사랑하는 것일까. 한국인에게 죽음은 항상 억울하고 분한 일인가. 안타까운 죽음으로 국상(國喪) 분위기가 뜰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자들을 만났다. 전쟁을 일으킨 쪽은 일본이다. 그 원죄(原罪)를 지울 순 없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들은 '억울하고 죄 없고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오늘의 생존자들은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그런데도 히로시마에선 사과 요구 시위가 없었다. 보상 요구도 없었다. 원폭 피해자 단체는 1984년 이래 미국에 사과를 요구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지만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오바마가 '사과는 않겠다' 해서 지레 포기한 게 아니다. "핵무기를 없애는 데 앞장서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지만 그마저도 끝내 혀 밑에 눌렀다. 71년 간직해온 울분과 보상 심리를 그들은 삭이고 또 삭였다. 뜨거운 감정을 차가운 가슴에 삼킨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인 특유의 피해자 의식은 인내(忍耐)를 모른다. 감정 과잉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서울지하철에서 달궈진 2등 국민의 전투 의욕은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강남역 공중 화장실서도 그 징조가 뚜렷했다. 6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들이 깔려 있지 않은가. 정규직 중에 언제 구조조정으로 밀려날지 모를 2등 국민 예비군도 많다.

    1등 국민과 2등 국민 간의 전면전이 언제 발발할지 조마조마하다. 선거판도 지역 대결이 옅어지면서 소득 계층 간 대결, 사회적 신분(身分)의 대결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성장이 뒷걸음칠수록 신분 간 갈등, 계층 간 충돌은 잦아질 것이다.

    정당들도 여야 할 것 없이 제1국민 이익을 감싸고 돌았다. 변변한 협회도, 노조도, 조합도 없는 B급 시민들은 여의도에 접근할 수도 없다. 정치가 이들에게 숨통을 터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변칙적이고 과격한 싸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대로 2등 국민의 거사(擧事)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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