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우리 黨 대선 후보가 한 말? 신경 꺼도 됩니다"

    입력 : 2016.06.04 03:00

    訪韓한 美 공화 의원들 "트럼프 발언 걱정 말라"할 뿐 유권자 표심 변화 못 읽어
    새누리 4·13 총선 참패하고도 여전히 민심 파악 못 해
    이러다 분노·좌절의 불길에 휩쓸리면 다 타서 없어져

    강인선 논설위원
    강인선 논설위원
    며칠 전 미국 공화당 상원 의원 세 명이 서울을 찾았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 숫자를 확보한 직후였다.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의원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미 관계에 대한 미국 의지가 변함없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한·미 관계를 위협하는 발언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의원들이 역할을 잘할 테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외교만은 '초당적'으로 하는 나라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갔을 땐 아무리 미워도 비판을 자제한다. 그런데 거꾸로 공화당 의원들이 외국에 가서 자기 당 대선 후보가 한 말을 부인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대선에서 이기긴 이겨야겠는데 의회가 뒷감당할 일이 걱정인 모양이었다. 우리나라 야당 의원들이 미국 가서 야당 대선 후보가 경선 과정서 했던 공약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미국인들을 다독인다고 상상해보라. 당이 뒤집힐 것이다.

    의원들도 이 상황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트럼프를 거론할 땐 '좀 거칠지만',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통상적인 후보는 아니라서', '트럼프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이란 표현을 썼다. 그래도 트럼프가 7월 전당대회에서 공식 지명되면 그때부터는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공화당 의원들조차 이렇게 주저하는데 왜 수많은 공화당원이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선택했을까. 의원들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다. 언스트 의원은 지역구민에게 들었다면서 "공화당원뿐 아니라 민주당원, 무당파도 경선에 참여해 트럼프를 찍었다. 트럼프는 미국인들이 연방정부에 느끼는 좌절감을 짚어낸 거다"라고 했다. 날로 심해지는 빈부 격차 속에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는 중산층의 좌절감 코드를 읽어냈다는 것이다.

    설리번 의원도 "지난 10년 경제 통계를 들여다보면 끔찍하다. 중산층이 다치고 있다. 경제성장이 곧 기회이고 진보인데 그게 안 되니까 미국인들이 좌절하고 있다"고 했다. 야당 의원으로서 지난 8년 오바마 정권을 평가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마무리 발언은 마음을 울렸다. "이번 미국 대선에선 국민의 좌절감을 명확하게 규정해내는 후보가 이긴다. 국민에게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미국 경제가 다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후보가 이길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라파이유는 미국인들이 늘 '반란을 이끄는 지도자'를 원한다고 했다. 변화·전진·재창조 과정을 이끌 수 있는 사람, 무엇이 망가졌는지 알고 그것을 고치는 방법도 아는 사람, 문제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트럼프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란을 시도한 지도자감으로 보였을 수 있다.

    정치권 밖에 있던 트럼프가 민심을 잡아내는 동안 넋 놓고 있던 정치인들이 뒤늦게 민심 공부를 좀 한 모양이다. 입만 열면 '민심'을 말하는 정치인들은 보통 사람에 비해 현실 감각이 약하다. 한 미국 정치학자는 정치인과 일반인을 상대로 조사해보면 정치인 쪽이 위선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성격이 강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했다. 지도층에 속할수록 이상과 현실 격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4·13 총선에서 참패한 후 50일 넘게 공전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여전히 총선에 나타난 국민 뜻이 분노였는지 좌절이었는지 진단조차 못 하고 있다. 작은 일에도 쉽게 격해지는 요즘 민심은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 같다. 불이 스치기만 해도 타오를 기세다. 그런데도 여당은 이 민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더 큰 패배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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