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여성 호신술

    입력 : 2016.06.03 03:00

    몇 년 전 미국 대학에서 여성 호신술 특강을 듣고 온 친구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을 때려봤다"고 했다. '치한' 역을 맡은 남성 자원봉사자가 공격하면 어떻게 방어할지 배웠다고 했다. 주먹으로 힘껏 쳤지만 두꺼운 솜옷을 입은 치한 대역이 "더 세게 때려야지 그 정도론 안 된다"고 외쳤다. 죽을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효과가 없었다. 상대 힘을 역이용하는 호신술도 배웠다. 하지만 긴급한 순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주변에서 "한적한 숲에서 혼자 조깅하지 말라"고 했다.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얼마 뒤 연방정부 여성 인턴이 실종됐다.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찾았지만 연기처럼 사라졌다. 몇 년 지나 도심 공원 숲속에서 뼈가 발견됐다. 뉴욕 살던 친구는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다 강도를 만나 빼앗길 뻔한 뒤로 천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제야 왜 미국인 친구가 호신술 강의를 듣는지 이해됐다.

    [만물상] 여성 호신술
    ▶전문가들은 늘 주변을 경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산만하고 부주의해 보이면 범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관 앞에선 재빨리 들어가고 운전할 땐 반드시 문을 잠근다. 주차해 둔 차문은 멀리서 리모컨 키로 열지 말고 타기 직전에 연다. 관련 스마트폰 앱도 많다. 위급 사이렌을 울려주는 앱, 휴대폰을 흔들기만 해도 자동 신고되는 앱도 있다. 인적 드문 곳에는 성능 좋은 CCTV만 충분해도 범죄를 막는 효과가 크다고도 했다.

    ▶젊은 여성 혼자 맘 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는 나라가 몇 안 된다. 최근 조사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안전한 나라 1위였다. 일본, 싱가포르 정도가 뒤를 잇는다. 테러 청정 지역인 데다 총기 소유가 금지돼 있고 치안도 잘 유지된 덕이다. 하지만 요즘 체감 안전은 크게 떨어졌다. 강남역 인근 화장실 살인 사건, 수락산 등산로 살인 사건을 보면 여성과 약자가 마음 놓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 조심하고 예방해도 막을 수 없으니 불안감과 무력감이 더 크다.

    ▶정부가 엊그제 여성 대상 강력 범죄 종합 대책을 내놨다. 양형 기준 안에서 최고형을 구형하고, CCTV를 더 설치하고, 새 건물엔 남녀 화장실을 따로 짓는 기준을 강화한다고 했다. 너무 형식적이라 와 닿지 않는다. 차라리 대전 서구에서 하고 있다는 무료 호신술 교육에 더 눈이 간다. 여성들도 모이기만 하면 안전 앱 정보를 나누고 "공공 화장실은 혼자 가지 말자"며 스스로 지킬 방법을 찾는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명성은 허울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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