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번쩍하는 순간 옷과 피부가 너덜너덜한 채로 10m쯤 나가떨어졌다. 몸이 너무 뜨거워 강물로 뛰어들었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1992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한 달을 머물며 피폭자들을 만났다. 다리를 잃고 손이 굽은 채로 암과 피폭 후유증에 시달려 온 사람들이 울며 그날을 증언했다. "일본이 신성한 전쟁을 하고 있고 반드시 승리할 줄 알았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때 머물던 숙소가 '원폭 돔'에서 가까웠다. 일본은 철골 앙상한 건물을 원폭 기념물로 삼았다. 하루에도 몇 명씩 피폭자 인터뷰를 하다 밤에 폭심(爆心) 근처에서 잠들면 악몽을 꿨다. 피폭자들은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도 미국을 비난하지 않았다. 모임에서 이유를 물었더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한참 망설이다 누군가 "일본이 먼저 도발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인류가 다시 이런 일을 겪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지난주 히로시마 원폭 돔을 배경 삼아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총리 손을 잡았다. 미군 폭격기가 인류 최초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 71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꽃을 바쳤다. 그는 "그날 숨진 십만 일본인, 수천 한국인, 십여명의 미군 전쟁 포로를 애도하러 왔다"고 했다. 하지만 150m 떨어진 조선인 위령비는 찾지 않았다.
▶히로시마를 걷다 보면 '평화'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다. '평화기념공원' '평화기념자료관' '평화 기념 우체통'…. 히로시마는 국제 평화 도시로 거듭나겠다며 수많은 서구 지식인과 예술가, 언론인을 초청해 참상을 보여줬다. 그들이 다녀간 뒤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했다.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 캠페인'이다. 처참한 실상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일본이 첫 원폭 피해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질수록 2차대전 가해국이라는 역사는 흐릿해진다.
▶미국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임 초 구상의 마무리라고 했다. 사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오바마 방문은 일본이 피해자라는 인상만 부각시킬 뿐이다. 일본이 자기네가 저지른 전쟁에 대해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희석됐다.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사에 얽힌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가 여전히 국제정치적 현실인 동북아에선 다른 문제다. 오바마의 구상과 아베의 계산이 맞닿은 부분에 그런 배려는 없다. 일본이 수십년 공들인 끝에 미국 대통령까지 히로시마에 오게 하는 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