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총리의 남편

    입력 : 2016.05.28 03:00

    영국 대처 총리 남편 데니스는 중년에 접어들며 신경쇠약에 걸렸다. 정치인 아내와 사업가 남편은 너무 바빠 서로 돌볼 시간이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은 "정치인 배우자로 감당해야 할 모든 것이 싫다"며 남아공으로 떠났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돌아와 죽을 때까지 대처 곁을 지켰다. 아내가 총리가 되자 사업을 정리하고 후원자 역할에 온 힘을 쏟았다. 관저에서 장관 부부 동반 모임이 열리면 대처가 장관들과 회의하는 동안 장관 부인들과 차를 마셨다. 대처는 "총리라는 외로운 자리를 견딘 건 바위 같은 남편 덕"이라고 했다.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가 될 독일 메르켈은 동네 수퍼마켓에서 장을 봐 남편 아침 식사를 챙긴다. 하지만 남편 자우어는 2005년 아내의 총리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손꼽히는 양자(量子)화학 학자인 남편은 "연구하느라 바빠서"라고 했다. 실제 이유는 "제2의 대처 남편이 되고 싶지 않다"였다. 그는 대중 앞에 모습 드러내기를 꺼리지만 바그너축제엔 아내와 함께 나타난다. 그래서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만물상] 총리의 남편
    ▶자우어는 해외 순방 동행을 제외하곤 공식적인 총리 남편 역할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독일서 열린 G8 정상회의에서 정상 부인들 안내를 맡았다. 그해 메르켈의 G8 최고 업적은 "내성적 남편을 세상에 끌어낸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왔다. G7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에서 엊그제 자우어가 정상 부인들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이제 총리 남편 역을 제대로 해볼 모양이다.

    ▶최고 지도자의 남편이 다 이렇게 '현부양부(賢父良夫)'식으로 아내를 돕진 않는다. 파키스탄 부토 총리의 남편 별명은 '미스터 10%'였다. 아내 후광을 업고 이권에 개입해 뒷돈을 받다 감옥에 갔다.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남편 역시 주변에 꾀는 정치인과 기업인 때문에 부패 의혹이 끊일 날 없었다.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도 남편의 스캔들로 타격을 입었다.

    ▶요즘 미국에선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남편 빌 클린턴의 호칭이 관심거리다. '전 대통령'이라고 하면 백악관에 대통령이 두 명 있는 것 같고 '퍼스트 젠틀맨'은 예우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더 큰 관심은 클린턴이 '대통령 남편'으로서 상징적 역할에만 만족하진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다. 여성 총리와 대통령이 늘어나면서 배우자 역할도 기존 틀을 벗어나고 있다. '외조'나 '내조'를 넘어선 새 역할이 계속 생겨날 모양이다. 그래도 정치는 '패밀리 비즈니스'이고 부부는 동지이자 동업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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