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노케미족의 등장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에 폐를 딱딱하게 만드는 독성 물질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 수는 5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런데 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화학제품 공포가 우리를 덮치고 있다.

  • 구성=뉴스큐레이션팀 정영민

    입력 : 2017.08.29 00:00

    이번엔 생리대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생리대 부작용' 문제가 터졌다.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정 생리대(주식회사 깨끗한 나라의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한 뒤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불만이 잇따라 나온 것이다. 여성환경연대가 제보를 분석한 결과, '생리주기가 바뀌었다'는 여성은 65.6%, '생리혈이 줄었다'는 여성은 85.8%에 달했다. 어떤 여성은 계속 생리불순을 겪다가 나중에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진단 받았다. ▶기사 더보기

    소비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식약처는 깨끗한 나라를 비롯해 유한킴벌리·엘지유니참·한국피앤지·웰크론헬스케어 등 국내 생리대 제조업체 상위 5곳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한 대형마트 직원이 유해물질 논란이 있는 '릴리안 생리대'를 매대에서 치우고 있다. /조선DB

    실제 한 여성이 일평생(약 40년간) 쓰는 생리대의 양은 1만여 개가 넘는다. 한 번 생리할 때 24시간, 평균 3~4일을 맨살과 생리대를 맞대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생리대가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지는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 의외약품이지만 '천·붕대류'에 속하는 생리대는 식약처의 '전(全) 성분 표시제도'의 의무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안 생리대' 찾아 나선 여성들

    생리대 파문이 커지면서 여성들은 스스로 '안전한 생리대'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사실 유해한 먹거리나 화학제품은 안 먹고 안 쓰면 그만이지만, 여성에게 생리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대안 생리대로 가장 각광받는 건 '면 생리대'다. 100% 면으로 만들어져 피부 질환이라 생리통, 냄새 등이 완화된다는 후기가 많다. 한 번 구매하면 빨아서 5년간 재사용이 가능하다. 이밖에 해외에서 '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이나 '생리컵'을 사용하는 여성들도 있다.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생리컵은 피부에 닿는 부분이 없어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정보가 부족하고 아직 임상 연구가 적어 부작용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기사 더보기

    ▶관련기사 "국산 생리대 못 믿겠다" 대체품 찾아 나선 여성들

    아직 가시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충격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임신부들이 급성 호흡부전으로 잇따라 입원하며 시작됐다. 입원한 여성들은 폐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동일한 증상을 보였는데, 한동안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사건 발생 3개월여가 지나서야 가습기 살균제가 사람을 사망케 한 주범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인 원인 물질은 PHMG(Polyhexamethylene guanidine,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단 6시간 만에 시험용 쥐 20%를 폐사하게 만드는 강력한 독성 물질인 PHMG는, 사람에게 폐 섬유화(폐를 딱딱하게 만드는 것)을 유발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2016년 5월 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가운데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련성 조선일보 객원기자

    아이와 임산부, 가족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썼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문제가 됐던 제품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스티커가 버젓이 붙은 채 판매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엔 탈취제, 모기 살충제, 물티슈 등에도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 15명을 청와대로 초대해 직접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확실한 원인 규명과 의학적 판정을 위해 조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인정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으며, 소송도 아직 진행 중이다.

    "아무것도 못 믿겠다"… '노케미족'의 등장

    "화학 성분이 든 물건을 살 때마다 '이건 괜찮을까'라는 걱정부터 들어요. 이제 그냥 안 쓰기로 했어요. 그게 마음이 편해요."

    서울 방배동에 사는 주부 윤서영(32)씨는 지난달 온라인 쇼핑몰에서 '원터치 모기장'을 샀다. 두 살 된 아들을 생각해 원래 쓰던 전자모기향은 버렸다. 윤씨는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 젖병을 쓰고, 이유식도 유리 소재로 된 그릇에만 담는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로 나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주변 친구들도 최근 살림살이를 천연 제품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올해도 '못 믿을' 화학 제품이 등장하자, 화학 생활용품을 극도로 꺼리는 '케미포비아(화학 공포증)' 현상이 퍼지고 있다. 케미포비아는 화학을 뜻하는 'chemical'과 '공포증(phobia)'을 합친 말이다. 화학제품 사용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은 '노(no)케미족'으로 불린다.

    [만물상] '노케미(No-chemi)족


    노케미족이 사는 법

    대부분의 '노케미족'은 천연 재료를 이용해 스스로 제품을 만들어 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천연 재료들의 매출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G마켓에 따르면, 화학 섬유유연제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초는 한 달 동안 전년 대비 매출이 69% 증가했으며,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은 각각 23%씩 더 잘 팔렸다. 반면 같은 기간 섬유유연제·표백제·방향제 등 화학 생활용품은 판매가 급감했다. ▶쪼그라드는 화학생활용품 시장


    '노케미족'의 소비 패턴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어떻게 화학 물질과 멀어지기 위해 노력하는지 엿볼 수 있다. 최근 인터넷 카페·블로그에서 공유되는 노케미족의 생활 방식을 정리했다.

    만능 친환경 세제 삼총사
    베이킹소다
    구연산
    과탄산소다

    ■ 베이킹소다 (탄산수소나트륨, sodium hydrogen carbonate)
    화학 생활용품을 대체할 재료로 가장 활용도가 높은 것은 베이킹소다다. 국립환경과학원의 화학물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베이킹소다는 이탄산 나트륨, 탄산수소나트륨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시중에 판매되는 베이킹소다의 성분표에 100% 탄산수소나트륨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킹소다는 엄밀히 따지면 화학물질(분자식:NaHCO3)이지만, 인체에 독성이 없어 식품 첨가물, 의약품에도 사용된다. 일반 가정에서는 청소나 세탁 용도로 쓰는 것이 좋다. 화학 제품으로도 잘 제거되지 않는 욕실·싱크대의 찌든 때를 없애는 것부터 냉장고·신발장의 탈취제, 옷의 색감을 살리는 표백제 역할까지 가능하다. 또 베이킹소다로 과일을 씻으면 껍질에 묻은 잔류 농약을 40% 가까이 제거할 수 있다.


    ■ 구연산 (citric acid)
    구연산은 오렌지·레몬·라임 등의 신 과일에 많이 들어있는 천연 성분이다. 구연산 가루를 물에 타 구연산수를 만든 뒤 분무기에 넣어두면 청소 시 사용하기 용이하다. 특히 세균이 많이 번식하는 화장실이나 세탁기 배수구, 아이들 장난감에 뿌려준 뒤 닦으면 살균 효과가 있다. 단, 산성을 띈 구연산과 염기성을 띈 베이킹소다를 섞어 사용하면 중화되어 효과가 사라진다. 둘을 함께 쓰려면 베이킹소다로 먼저 세척한 뒤 구연산을 이용해 살균해야 한다.


    ■ 과탄산소다(sodium percarbonate)
    과탄산소다는 탄산소다와 과산화수소를 합한 것으로, 시중에 파는 표백제의 주원료이기도 하다. 때문에 옷의 얼룩 제거에 많이 사용된다. 물과 반응하면 산소와 물로 분해돼 잔유물이 남지 않는 특성 때문에 자극이 없어야 하는 아기옷 세탁에 사용하는 주부들이 많다. 그러나 식품에 쓰이는 베이킹소다·구연산과 달리 식용이 아니므로 음식이나 식기에는 쓰면 안 된다. 염기성이 강한 특성 탓에, 과탄산소다 노출이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따라서 맨손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쓰기 불안한 화학세제… 안전하게 만들어 써볼까
     
    천연 트리트먼트
    식초

    우리는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을 때 거품이 풍성하게 나야 깨끗이 씻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거품을 만드는 건 화학 계면활성제다. 치약·샴푸·폼클렌징·주방 세제 등에 함유된 계면활성제는 세정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지만, 피부 트러블·염증·탈모 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천연 계면활성제가 들어있다고 광고하는 제품의 성분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노푸족'(No shampoo='노 샴푸'라는 뜻으로 샴푸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말함)은 샴푸·린스 대신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이용해 머리를 감는다. 베이킹 소다로 먼저 두피를 씻은 뒤 린스를 한 두 방울 떨어뜨린 물로 헹궈 내면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있다. 노푸족에 따르면 처음에는 샴푸를 쓰지 않는 것이 찝찝하지만 점차 모근이 건강해지고 머리결이 좋아진다고 한다. 다만 '노푸' 때문에 오히려 모공에 피지가 축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본인의 두피 상태에 맞춰 도전하는 것이 좋다.

    비누, 샴푸, 바디 워시 끊으면 정말 피부가 좋아질까?
     
    미백 화장품 대신
    쌀뜨물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미백 기능이 있는 화장품 속에도 화학 성분이 들어있다. 특히 미백 화장품에는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성분을 쓰는 경우가 많아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다. 식품안전처에서 허용한 미백 성분은 8가지(닥나무추출물, 알부틴, 에칠아스코빌에틸, 유용성감초추출물, 아스코빌글루코사이드, 나이아신아마이드, 알파-비사볼올, 아스코빌테트라이소팔미테이트)로, 이외의 성분이 포함됐다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 ▶ 미백화장품, 원리와 함께 성분도 꼼꼼히 확인해야


    미백 화장품이 의심스럽다면 천연 재료인 쌀뜨물을 활용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백 화장품처럼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쌀뜨물 세안을 꾸준히 하면 환하고 탄력 있는 피부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쌀뜨물에는 콜라겐 합성을 촉진하는 오리제닌 펩티드라는 성분과 비타민 B1·B2가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쌀뜨물은 미리 만들어놓고 쓰면 상할 수 있어 그때 그때 만들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노케미족이 될 수는 없다

    일상생활에 쓰는 모든 화학제품을 천연 물질로 대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 삶에 이미 많은 화학제품이 들어와 있고, 그것들이 주는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위에서 소개한 노케미족의 방법들은 사실 엄청난 번거로움을 수반한다. 화학제품에 잘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천연 재료로 변경했을 때 '뭔가 깨끗이 되지 않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시간이 없어서, 귀찮아서, 잘 몰라서 어쩔 수 없이 화학제품을 써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꼭 피해야 할 생활 속 화학 성분들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에 부착된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화학성분의 이름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생활용품에 많이 쓰이는 유해 성분 몇 가지는 꼭 알아두도록 하자. 아래에 제시된 것들 외에 정보를 더 알고 싶은 화학성분이 있다면 안전보건공단의 화학물질정보 검색(ncis.nier.go.kr) 사이트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
    PHMG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부른 장본인이다.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 손상, 호흡 곤란 등을 일으킨다. 가습기 살균제 외에 표백제·섬유유연제에 사용되기도 한다.


    ■ 파라벤
    제품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부제의 일종인 파라벤은 화장품·치약·샴푸·립밤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발암물질인 것으로 조사됐다.


    ■ 프탈레이트
    프탈레이트는 향기를 오래 지속시켜준다는 이유로 향수·방향제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발암물질로, 정자의 수와 운동성을 떨어뜨려 생식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


    ■ 비스페놀A
    비스페놀A는 영수증·은행의 순번대기표 등에 포함된 환경호르몬으로, 영수증을 만질 때 피부로 흡수될 수 있다. 성인에게는 생식 기능 저하, 아이들에게는 성장 발달 저하 등의 부작용을 유발한다.


    ■ 트리클로산
    강력한 항균 기능을 가진 트리클로산은 손 세정제·비누·치약 등에 사용된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연구팀의 실험을 통해 간 섬유화와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피레스로이드
    여름철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뿌리는 살충제에 많이 함유돼 있다. 피레스로이드는 독성이 적어 비교적 안전한 화학물질로 취급돼 왔지만, 아이들에게 노출되면 ADHD 위험을 3배로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화학제품의 올바른 사용법

    비교적 안전한 화학성분이라 해도 독성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학성분에 최소한으로 노출되도록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화학제품들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알아보자.

    수세미에 직접 짜서 설거지하면 그릇에 잔류 세제가 남는다. 우리가 음식물과 함께 섭취하게 되는 잔류 세제의 양만 1년에 소주잔 1~2잔에 달한다. 따라서 세제를 물에 희석하여 설거지하고 그릇 하나 당 15초 이상 충분히 헹궈주는 것이 좋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덜어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일반적으로 삼푸를 한 뒤 잘 씻어냈다고 생각할 때가 70% 정도 씻겼을 때라고 한다. 좀 더 오래 씻는 기분으로  씻어내야 잔여물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각종 질병이 유행할 때마다 필수품처럼 여겨지지만, 이보다는 물과 비누로 자주 손을 씻는 것이 더 좋다. 유해성분이 포함된 손 소독제를 사용하면서까지 우리 손의 세균을 99% 없애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밀폐된 방에서 사용하거나 사람에게 직접 분사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영유아는 성인보다 숨을 자주 쉬기 때문에 살충제에 든 유해 성분을 흡입하기가 더 쉽다.

    맡긴 옷을 찾아왔을 때는 바로 실내로 들이지 말고 비닐을 벗긴 뒤 베란다에 널어놓는 것이 좋다. 드라이클리닝에 사용한 유기용매의 화학 물질로 인해 피부 손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또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혹자는 최근 발생한 '생리대 파문'을 두고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라고 말한다. 연이어 발생하는 화학제품 사태는 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던져지는 경고의 메시지와 같다. '노케미족'처럼 완전히 화학제품을 끊고 살 수는 없지만, 내가 쓰는 제품이 어떤 성분으로 이뤄져 있는지 알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또 소비자들에게 이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안전보건공단 화학물질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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