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8년부터 피해망상 증세를 보인 김씨는 2년 전부터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앓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19~20일 프로파일러 5명을 투입해 피의자 김모(34)씨를 심리 면담한 결과 전형적인 피해망상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 유형에 부합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발(早發)성 조현병’을 앓았던 김씨는 청소년기부터 혼자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는 등 특이행동을 보였고 부모와도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또 2008년부터는 1년 이상 씻기를 거부하는 증상을 보이거나 노숙생활을 하는 등 기본적인 자기 관리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씨는 2003년부터 “누군가 나를 욕하는 것이 들린다”고 호소하며 자주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지만, 이는 여성에게 특정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2년 전쯤부터 피해망상이 ‘여성’에 특정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씨가 2년 전 가입한 특정 모임에서 여성들로부터 사소하지만 기분 나쁜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며 “이미 그전부터 피해망상 증상이 있었고, 이렇게 말하는 명확한 근거도 없어 이 또한 피해 망상으로 왜곡해 인지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범행을 촉발한 직접적 원인 역시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씨가 서빙 일을 하던 식당에서 이달 5일 ‘위생상태가 불결하다’는 지적을 받고 이틀 뒤 주방 보조로 옮겼는데, 이 일을 여성의 음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김씨는 면담과정에서 “여성들이 천천히 걸어가면서 자신을 지각하게 만든다” “나를 향해 여성이 담배꽁초를 던졌다” “경쟁의식을 느낀다” 등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실무적으로 ‘증오 범죄’(Hate crime)와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실제 지난해 ‘특정 민족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을 망친다’는 망상에 시달리던 환자가 해당 민족 사람 3명을 살해한 사건도 인종 혐오 범죄가 아닌 피해망상에 의한 정신질환 범죄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의 범행 역시 피해망상 증세가 심각해진 상태에서 벌어진 점, 표면적 동기가 없는 점, 피해자에게 범죄를 촉발할 원인이 없었다는 점 등에 미뤄 봤을 때 묻지마 범죄 중 정신질환 유형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17일 오전 12시 33분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남녀공용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1시 7분쯤 남성 6명이 들고난 뒤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 A(23)씨를 흉기로 수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