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문화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잘 정착한다. 선진국 학교들은 학생들이 읽기 문화에 익숙하도록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저자 짐 트렐리즈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읽기 교육을 하는 학교'로 애리조나주(州) 피닉스 자하리스 초등학교를 꼽았다. 일본 지바현 후나바시(船橋)시 도요(東葉) 고등학교의 '아침 독서 10분 운동'은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교과서·책상·걸상 없는 3無 교실
미국 자하리스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서면 '여기가 학교 맞나' 생각부터 든다. 교실에 있어야 할 책상, 걸상, 교과서가 없어서다. 대신 바닥에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고 낮은 원탁 4개에 학생들이 둘러앉았다.
이층침대와 소파, 안락의자, 심지어 욕조도 있다. 학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눕거나 걸터앉거나 엎드리는 등 각자 가장 편한 자세로 책에 빠져들었다. 10분간 개인 독서 후 옹기종기 카펫 위에 모여 앉았다. 남학생 둘이 급우들을 대표해 소파에 앉아 그림책 '고양이 피트'를 읽어줬다. 읽기 담당교사는 "혼자 읽거나 소그룹 읽어주기, 아니면 어른과 함께 읽기 등 다양한 독서법을 경험해 가장 알맞은 방식을 학생이 스스로 깨닫게 한다"고 했다.
자하리스 초교는 거대한 '책의 숲'이다. 교실과 복도 곳곳에 책들이 비치돼 있고 벽에는 문학 작품에 나온 문구들이 적혀 있다. 학교 전체에 책 10만권이 있다. 2002년 개교 이래 책 읽기 교육을 강조해 온 마이크 올리버(54) 교장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올리버 교장은 "독서는 스스로 의미를 찾는 훈련으로 비판적 사고를 키워준다"며 "단일 교과서로 지식을 일방 전달하는 19세기식 교육으론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이 학교에선 수학·과학은 정규 교과서를 쓰지만 읽기·쓰기·문학 등 언어 과목은 소설 등으로 가르친다. 정규 교과서를 쓰지 않기에 교사들은 수업 준비도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자하리스는 지난해 애리조나주가 주관하는 표준시험 등으로 매긴 학교 종합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다. 소문 듣고 학군 밖에서 전학 온 학생이 너무 많아, 600명 정원에 이미 950명이나 다니고 있다. 지난해 미국 교육 전문지 '패어런트 & 차일드'가 '미국에서 가장 멋진 학교 25곳'으로 뽑았다.
◇아침 독서 10분이 가져온 기적
일본 도쿄 도심에서 1시간 반. 지바현 후나바시시 도요 고등학교 아이들은 매일 아침 8시 30분, 전교생이 10분간 침묵하고 책을 읽는다. 뭘 읽건 자유지만 독서 말고 딴 일 하면 안 된다. 가령 시험 기간이 닥쳤다고 참고서를 펼치면, 교탁에서 책 읽던 담임 교사가 '그거 말고 책 보라'고 지그시 눈짓한다. 하루 10분만큼은 다른 생각 접고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지자는 게 모두의 약속이다.
도요고는 1988년부터 29년째 '아침 독서'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독서 하면 도요고"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이젠 전국적으로 2만7000개 넘는 학교가 동참 중이다. 단순히 '독서하면 성적 오른다'는 발상으로 계속해 온 일이 아니다. '책 읽기는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철학이 깔려있다. 저마다 자기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책을 통해 생각을 키워나가고, 즐거울 때나 어려울 때나 책을 통해 위안과 지혜를 구할 수 있도록 고교 시절 일찌감치 책 읽는 경험을 쌓아주자는 운동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다나카 노코(16)양은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들 "1시간이면 지루할 텐데 10분이니까 부담 없다"고 했다. 이이지마 가즈키(16)군은 "예전엔 책 읽기가 별로였는데 고등학교 들어와서 좋아하게 됐다"면서 "재미있는 책은 아침 독서 시간이 끝난 뒤에도 하루 일과 중간중간에 계속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독서 스타일도 깨우쳐 나갔다. 구마가이 메구미(16)양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일품인 일본 근대소설의 고전이다. "여러 장르를 읽는데, 재미없는 책도 한번 잡으면 꾹 참고 쭉 읽어요."
아이들 나름대로 인터넷과 책의 장단점도 비교했다. 쓰유자키 야요이(16)양은 "인터넷은 자기가 알고 싶은 정보를 찾거나 좋아하는 걸 즐기기에 좋다"면서 "책을 읽을 땐, '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그 점이 재미있다"고 했다.
교사들에겐 독서 시간이 아이들을 좀 더 찬찬히 관찰할 기회가 된다. 고도 다쿠토(26) 국어 교사는 "집중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은 얘기해보면 뭔가 고민이 있다"면서 "아침 독서 시간 10분 중 절반은 우리 반 아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보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