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 개혁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같다. 박 대통령은 규제와의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 '암(癌) 덩어리' 규제를 단두대에 세우겠다며 연일 거칠게 몰아치고 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렇게까지 규제를 원수(怨讐) 취급하며 적개심을 불태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규제 완화를 실감한다는 사람은 적다. 산업계가 매기는 규제 개혁 성적표는 바닥권이고, 기업들은 여전히 규제 때문에 힘들다 아우성이다. 왜 이 모양일까. 대통령이 그토록 드라이브 거는데 왜 규제가 줄어들지 않을까.

박근혜 정부의 규제 혁신 '1호'가 푸드 트럭이다. 2014년 3월 규제 개혁을 주제로 한 민관 합동회의가 소집됐다. 정권 출범 1년이 흘러도 성과가 없자 박 대통령이 작심하고 기획한 이벤트였다. 박 대통령이 직접 사회봉을 잡았다. 참가자들은 저녁도 거른 채 7시간 동안 끝장 토론을 벌였다.

민간 측에서 애로 사항이 쏟아졌다. 그 하이라이트가 푸드 트럭이었다. 규제 때문에 푸드 트럭 영업이 힘들다는 민원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즉각 시정을 지시했다. 정부는 10년 묵은 규제가 단박에 풀렸다며 홍보했다. 푸드 트럭이 2000대 생기고 일자리가 6000개 만들어질 것이라 장담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관련 법령을 고친다며 요란 떨었지만 좀처럼 푸드 트럭은 생기지 않았다. 2년 지난 지금 허가받은 푸드 트럭은 고작 184대뿐이다. 그나마 장사가 안돼 망할 지경이라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유가 있었다. 푸드 트럭은 장사하다 안 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동 업태(業態)다. 그러나 규제를 없앤다면서 정작 영업장소 규제는 대상에서 뺐다. 지정된 3000여 곳에서만 장사할 수 있게 제한한 규제를 그냥 놔둔 것이다. 그것도 영업하려는 장소마다 일일이 서류 5종을 작성해 지자체를 찾아가선 수수료 내고 신고해야 한다. 이래선 푸드 '트럭'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시늉만 내고 진짜 규제는 숨겨 놓은 것이었다.

아마도 왜 규제 개혁이 안 되는지 가장 의아한 이는 박 대통령 본인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관료를 믿는 것 같다. 대통령이 지시만 내리면 각 부처가 전심전력 이행할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게 대통령이 속고 있는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는 규제 철폐"라며 신산업 규제를 없애라고 지시한 것은 3년 전이었다. 하지만 관련 부처는 이제서야 겨우 드론·무인차 등의 규제를 손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지시한 수도권 규제 완화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헤이딜러'나 '콜버스랩'처럼 황당 규제가 청년 벤처의 숨통을 끊는 사태도 있었다. 정부는 엊그제 떠들썩하게 규제 혁신안을 내놓았지만 그 안에 또 어떤 '가시'를 숨겨 놓았을지 모른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답답하다"를 연발했다. 그토록 규제 개혁을 주문했는데 왜 속도가 나지 않느냐고 했다. 질책이자 하소연이었다. 안타깝다면서 말을 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의 본질은 보지 못하는 듯했다. 박 대통령 발언은 평론가 같았고 지시는 추상적이었다. 대통령은 "세상이 놀랄 파괴적 혁신"을 주문했다. 표현은 멋지지만 이런 공자님 말씀으론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규제 개혁 지시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료해야 한다. 어느 분야, 특정 규제를 언제까지 없애라고 시한까지 못 박아 몰아붙여야 한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의 주특기는 현장 출동이었다. 문제만 생기면 점퍼 입고 현장에 달려갔다. 당시 청와대의 모(某) 수석에게 왜 그렇게 현장에 목매느냐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관료 집단에 속지 않기 위해서"였다. MB는 관료들이 문제점을 숨기고 자기 유리하게 보고하는 DNA를 지녔다고 믿었다. 그걸 깨트릴 방법이 현장 확인이었다. "내가 가봤더니…"라며 지시하는 데 반박할 관료는 없다. MB의 현장행(行)은 요컨대 관료 제압술이었다.

박 대통령 스타일은 대조적이다. 운동 경기로 치면 박 대통령의 역할은 '심판'이나 '감독'에 가깝다. 각 부처 장차관에게 맡겨놓고 뒤에서 독려하는 스타일이다. MB는 규제 전쟁에서 직접 '선수'처럼 뛰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개인기 대신 시스템과 제도로 규제와 싸우겠다고 한다.

시스템으로 풀려는 박 대통령 스타일이 원론적으론 옳다. 하지만 자칫 현장과 괴리돼 겉돌 수 있다. 오만 가지 이유를 들이대며 뭉개는 관료 집단의 페이스에 말려들 위험이 크다. 푸드 트럭의 실패도 현장에서 얼마나 엉터리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순진하게도 관료 집단의 선의(善意)를 믿은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속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가보는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센터만 가지 말고 규제의 현장도 자주 찾길 강력하게 권한다. 가보면 왜 규제 개혁이 제대로 안 되는지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