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죽었다" vs "정신 이상자의 개인 범행일뿐"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여성 혐오 논란으로 비화

입력 2016.05.19 15:14 | 수정 2016.05.19 17:25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내용의 포스트잇과 조화 헌정이 이어지고 있다./연합뉴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상에서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한 주점 공용 화장실에서 신학교를 중퇴한 김모(34)씨가 한 여성(23)의 왼쪽 가슴과 어깨 등을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과 일면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김씨는 경찰에서 살인 동기로 “평소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왔다”고 밝혔다.

사건이 알려지자 여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필두로 “여성 혐오가 ‘묻지마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번 사건을 추모하고 여성 혐오·폭력에 저항하자는 취지로 ‘하얀 리본’ 캠페인을 벌이자는 주장이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피해자는 여자라 살해당했다” “나도 여잔데,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피해자가 됐을 것” 등 캠페인 취지에 공감하는 내용의 글이 쏟아졌다

사건 현장과 가까워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장소로 부상한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도 “여성 혐오는 사회적 문제” “남아 있는 여성들이 더 좋은 세상 만들게요” 등 여성 혐오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의 쪽지들이 붙었다. 강원 춘천의 한 대학에는 “5월 17일 새벽 한시, 강남 공중 화장실에 가지 않았기에 살아남았다”며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느 순간에 살해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고 쓴 대자보도 등장했다.

사건을 여성 혐오와 연관짓는 유명 인사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8일 강남역 현장을 방문한 뒤 트위터에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라는 말을 인용해 “슬프고 미안합니다”고 했다. 프로 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의원인 김남훈은 트위터에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 차별 살인’이 맞는 것 같다”며 “제가 화장실에 들어갔어도 그랬을까”라고 했다. 배우 강예원은 “피해는 한명의 여성이 당했고 범인은 한명의 남성이지만 우리 모두가 희생자가 될 수 있기에 개인들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중대하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을 비롯한 외국인·지역·세대를 둘러싼 혐오 감정들이 결국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이런 혐오 정서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더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신 질환이 있는 범죄자의 행동을 여성 혐오로 일반화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경찰은 김씨가 2008년부터 작년까지 4차례 정신분열증 치료 등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전력을 확했다며 이번 사건을 김씨의 정신 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은 18일 강남역에 “한 인간쓰레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온 남성들을 모욕하지 마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였고, 이 주변에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주장하는 포스트잇들이 추가로 붙는 등 새로운 갈등으로 번질 기미를 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피해의식이 있는 여성들이 사건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냐”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살해하면 가난한 사람도 잠재적 살인자냐” 등 글이 올라왔다.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신 이상으로 사회에 부적응한 김씨의 혐오는 아마 여성에 국한됐다기보다 사회 전체를 향했을 것”이라며 “단순히 자기보다 약한 대상을 노린 범행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이어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발언도 쉽게 둘러대는 변명일 수 있다”며 “어쩌면 노인이나 어린이가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노인 혐오·어린이 혐오라는) 그런 해석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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