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로 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야권(野圈)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을 상징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기념식 때 모두 의무적으로 함께 부르는 제창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보훈처는 16일 "또 다른 국론 분열"을 이유로 기념식장에서 희망하는 참석자만 부르는 기존의 '합창' 방식으로 결정했다. 이 갈등으로 지난 13일 여야 3당 원내대표의 청와대 회동에서 강조됐던 '협치(協治)'까지 흔들리고 있다.
◇野 "5·18 역사와 상징의 노래"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공식 기념식에서 제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5월 광주(光州) 정신'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1997년 기념식에서 제창됐다. 그러다가 일부 단체가 "종북 노래"라고 주장하면서 2009년부터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바뀌었다. 이 문제 때문에 유족들은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에 불참했었다.
국가보훈처가 '제창을 하게 되면 또 다른 국론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야권은 "5·18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왜 국론 분열이냐"는 반론을 펴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로 만들어진 것인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온시하는 것은 민주화를 부정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 야권 주장이다. 이날 두 야당은 지난 13일 회동에서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협치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면서 박승춘 보훈처장에 대한 해임 촉구 결의안을 20대 국회에서 공동 추진키로 했다.
◇與도 "재고해 달라"
새누리당도 이날 보훈처 결정에 대해 "재고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청와대 측과 소통했느냐'는 질문에 "총리한테 전화했고 보훈처장한테도 어쨌든 전향적인 방안을 찾아보라고 했다"고 답했다. 다만, 정 원내대표는 두 야당이 추진하기로 한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 결의안에 대해선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당 지도부는 당초에는 보훈처 입장에 반대 의견을 제시할 계획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박계 위주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협치를 하기로 한 마당에 첫 단추부터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며 분위기가 반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원장을 맡은 김용태 의원은 "우리가 잃을 게 뭐가 있다고 벌써 앞뒤를 재나. 최소한 당의 입장이라도 밝히자"고 했고, 홍일표 의원도 "모처럼 조성된 협치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리자"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진태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국민들이) 협치하라고 했지, 운동권 세상으로 바꾸라고 한 게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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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제창하면 또 다른 갈등 유발"
보훈처는 "'합창 현행 유지' 방침을 정한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이나 제창이 국론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선 광복회, 상이군경회, 무공수훈자회, 전몰군경미망인회 등 10여개 안보·보훈 단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거나 제창을 할 경우 행사에 불참하고 다른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보훈처는 기념곡 지정 문제도 전례와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보훈처 관계자는 "정부 기념식이 국민 통합을 위해 한마음으로 진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창 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선 안 된다는 게 안보·보훈 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