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노케미(No-chemi)족'

조선일보
입력 2016.05.17 03:00

2009년 '탈크(talc)'라는 물질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식약청은 120개 제약업체, 1122개 의약품 판매를 금지하고 회수하도록 했다. 물질이 서로 붙지 않게 하는 탈크에 발암물질 석면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베이비파우더에서 시작한 탈크 파동은 의약품을 거쳐 풍선, 수술용 장갑·고무장갑, 중국산 콘돔으로까지 번졌다.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물건이 치명적인 흉기일 수 있음을 일깨운 사례였다.

▶뚝배기에 음식을 조리하면 뜨거운 국물이 식탁에서도 오래가 식당은 물론 가정에서도 애용한다. 그런데 국물 없는 맨 뚝배기를 불로 가열하면 눈에 안 보이던 균열 사이로 하얀 거품이 흘러나온다. 설거지할 때 쓴 세제를 뚝배기가 미세한 구멍에 담고 있다가 토해내는 모습이다. TV에서 그 영상을 보고 놀란 주부들이 다투어 뚝배기를 버렸다. 세제 대신 쌀뜨물이나 밀가루 푼 물로 뚝배기를 씻는 주부도 많다. 주부들처럼 뚝배기 설거지를 하는 음식점은 얼마나 될까.

[만물상] '노케미(No-chemi)족'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표백제·제습제·방향제처럼 화학성분이 들어간 생활용품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옥시 제품뿐 아니라 화학 생활용품 전체에 대한 소비자 불신과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섬유 탈취제 시장 1위 '페브리즈'에 폐를 손상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는 주장이 잇따르자 환경부가 엊그제 제조사에 성분 공개를 요청하기도 했다.

▶화학물질(chemicals)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켜 '노케미(No-chemi)족'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어떤 화학제품이 위험한지 알 수 없으니 아예 안 쓰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천연 재료로 방향제·세제를 만들어 쓰고 샴푸·린스 대신 식초·천연비누를 사용하거나 물로만 머리를 감는다. 세탁소에서 옷에 비닐을 씌워 가져오면 곧바로 비닐을 벗겨 베란다에서 하루쯤 통풍시킨 뒤 옷장에 넣기도 한다. 비닐째 옷장에 걸어두면 드라이클리닝에 쓴 화학약품 냄새가 옷에 배기 때문이다.

▶화학제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어렵다. 옥시 사태는 건조한 실내 공기에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가습기를 틀어준 부모가 평생 자책(自責)하게 만든 비극이다. 이래서야 누가 마음 놓고 집에서 화학 생활용품을 쓰겠는가. 환경부는 앞으로 2년 동안 생활용품에 쓰이는 모든 화학물질의 인체 유해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옥시 사태 초기에 그런 자세로 대처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 나라가 부글부글 끓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척하는 우리 행정 체제를 또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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