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가 일어난 후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을 피해 항주로 옮겨 갔습니다. 하지만 이봉창·윤봉길 의거의 배후 인물이었던 김구 선생은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는 바람에 함께 가지 못하고 측근들과 임정을 후원하던 중국 국민당 간부 저보성의 고향 가흥으로 숨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도 만일의 경우에 피신할 수 있도록 호숫가 집에 머물면서 배를 한 척 띄워 놓았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중국 절강성 가흥시 매만가 76호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방문한 한국과 중국의 항일운동 전시기관 관계자 30여명은 관리책임자 셩팡(盛芳) 소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의 독립기념관과 중국의 항일운동 전시기관들이 2003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합동회의를 위해 모인 이들은 김구 선생 피난처와 바로 옆에 있는 저보성사료(史料)진열관, 엄항섭·김의한 등 임정 요원들이 머물던 숙소를 차례로 돌아봤다.
다음 날인 12일 오전 9시 가흥시 해염현 남북호풍경구 회의실에서 '제14차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관계자 연석회의'가 열렸다. 상해·항주·진강·장사·유주·중경 등 임시정부가 이동했던 지역에 세워진 기념관들과 상해 매헌윤봉길기념관,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등 한국 독립운동 관련 전시기관, 그리고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광동혁명역사박물관, 심양9·18역사박물관, 하얼빈731부대죄증(罪證)진열관, 남경위안소진열관, 여순일아(日俄)감옥박물관, 동북열사기념관 등 중국 각지의 항일운동 전시기관 관계자들이 2015년의 활동 내용과 2016년의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회의는 참석 기관들의 공동 현안과 협조 방안에 대한 토의로 이어졌다.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 상룽성(尙榮生) 관장은 "한국에서 영화 '암살'이 상영된 후 김원봉·윤세주의 발자취를 찾아 태항산을 찾는 한국인이 많아졌다"며 "하지만 조선의용군 유적들은 산간마을에 흩어져 있어 보존과 연구에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갈수록 훼손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세봉장군항일투쟁기념관 전정혁 관장은 "이제 참가 기관들의 상호 이해와 유대가 깊어진 만큼 5~10년의 중장기 연계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2017년 중국 광주봉기 90년과 황포군관학교 조선인 졸업생들의 역할' '2018년 항일의병장 이진룡 장군 순국 100주년' '2019년 한국 3·1운동과 중국 5·4운동 100주년' 등을 예로 들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장석흥 소장은 "이번 회의의 중국 참석자들은 오늘날의 저보성 같은 분들이며, 일본의 역사 왜곡에 공동 대처하고 아시아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오후 4시 회의를 마친 참가자들은 부근에 있는 또 하나의 '김구 피난처'를 찾았다. 가흥에 숨어 있던 김구는 그곳마저 안전하지 않자 그해 8월 저보성의 며느리 주가예의 친정이 소유한 남북호 별장으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엄항섭과 안공근 등 비서들을 통해 항주의 임정 상황을 파악하고 업무를 원격 처리하다 6개월 만에 가흥으로 돌아왔다.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당초 임정 관련 기관들과의 협조를 위해 시작한 연석회의가 해를 거듭하며 참가 범위가 계속 넓어지면서 한·중 역사 연대와 우의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