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오는 17일 발매되는 월간조선 6월호에 특종 기사가 2건 있다. 북한 김정은이 절친한 친구라며 평양으로 자주 초청한 전 NBA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에게 선물한 영문 책자 '최고 지도자 김정은'을 입수한 것과, 그런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상에 공개하고 있는 대북 정보 매체 '38노스(North)' 대표와 한 단독 인터뷰 기사다.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모든 것을 미화하려 작정하고 썼다는 확신이 들기에 일일이 인용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겠다. 하지만 책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김정은이 내렸다며 자세하게 인용해놓은 '지시'들이다. 책 저자들은 "이런 발언을 보여주면 김정은이 위대해 보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았다.

과연 그런지 한번 보겠다. 김정은이 미림승마구락부를 방문했다. 미림승마구락부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의 3배 크기라고 한다. 거기서 김정은이 이런 말을 했다. "컴퓨터를 과다하게 사용해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승마를 권장하라!" 능라유원지, 류강 헬스복합단지, 중앙동물원에서 한 지시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다.

"능라유원지에 전시할 박제 동물을 실물과 똑같이 만들라" "류강 헬스단지의 카펫을 고품질로 교체하라" "기린과 얼룩말을 포함해 외국 동물과 세계의 희귀 동물을 들여오라" "양말을 세계의 유행에 맞춰 제작하라"…. "유방암연구소 내부를 궁전(宮殿)처럼 만들라"는 말도 '여성을 위한 감동적인 지시'로 인용됐다.

문제는 이런 코미디언 같은 인물이 원자폭탄과 핵미사일과 최신형 잠수함과 첨단 전차(戰車)를 손에 쥐고 있으며, 우리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대북 정보망이 막대한 예산과 많은 인력을 쓰면서도 번번이 헛다리 짚거나 북한의 동향을 제때 파악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 비춰 '38노스'의 실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니 타운 공동대표에 따르면, 2010년 시작된 '38노스'는 상근 직원이 2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재정 지원도 정부가 아닌 존스홉킨스대학, 폴 니츠 고등국제대학 산하 한미연구원 등 네 재단에서 받을 뿐이다. 이들이 북한 움직임을 파악할 때 사용하는 인공위성 사진 또한 쉽게 살 수 있는 '상업용 사진'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북한 핵실험 준비 과정과 미사일 발사 징후를 파악해 전 세계 언론이 인용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일까. 그들은 2012년 4월 북한이 김일성 100세 생일을 기념해 위성을 발사하려 할 때부터 위성사진 분석에 들어갔다. 1차로 위성사진 전문가, 핵무기 전문가, 미사일 발사 체계 전문가 등 5명이 분석한다. 그들이 낸 보고서를 2차로 북한 전문가 20명이 검증한다. 왜곡을 피하기 위해 여러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데이터 퓨전' 기법을 쓴다. 이렇게 한 뒤에도 '38노스'는 특정 사건 발생 직후 바로 보고서를 게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대한 많은 자료와 다른 전문가의 분석을 확인한 뒤에야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다.

'38노스' 공동대표의 이런 증언은, 정확한 대북 정보를 얻는 것은 예산이나 인력이나 장비 문제가 아니며, '한건주의'식의 조급한 정보 공개가 오히려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북 정보를 분석할 때 각 기관끼리 '장벽'을 쌓기보다 신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상호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해 보인다.

김정은과 그 옹위 세력은 우리 국정원이나 기무사 같은 대북 정보 조직보다 상근 직원 2명에 공동대표 3명으로 구성된 '38노스'를 더 무서워하고 있다. 북한이 최근 자신들을 하늘 위에서 감시하는 서방 인공위성의 궤도를 파악해 동선(動線)을 정하고 위장막을 씌우는가 하면 '38노스'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만날 예산과 인력 타령만 해온 우리 정보기관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