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조웅장학재단의 직원은 조종래(78) 이사장 한 명뿐이다. 돈을 주고 직원을 고용할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조 이사장은 3년 전 원래 있던 직원을 내보내고 장학생 지원 서류 접수와 심사, 장학금 지급, 국세청에 공시할 결산 서류 작성 같은 모든 재단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고 있다.
이 재단이 아예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재단은 1999년 설립 이후 출연금(원금) 10억원에서 나오는 이자 수입으로 매년 50명에게 5000만원이 넘는 장학금을 줘왔다. 은행 금리가 연 7~8%였을 때에는 월급을 주고 직원도 뽑아 썼다.
하지만 초저금리 현상으로 은행 금리가 1%대로 떨어지자 문제가 생겼다. 은행 정기예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입이 15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연간 투자 수익의 70% 이상을 설립 취지에 맞는 장학사업에 써야 한다"는 이른바 '70% 룰' 규제(상속·증여세법)가 발목을 잡았다. 이 규제를 적용하면, 조 이사장이 장학금을 빼고 재단 운영비로 쓸 수 있는 돈은 1년에 450만원(투자 수익의 30%)가량밖에 안 된다. 한 달에 4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사무실 운영 경비를 쓰고 나면 직원 인건비를 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사장 월급도 따로 없을 정도다. 조 이사장은 "나이 들어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년 4월 국세청에 제출할 결산 서류를 작성할 때는 지인(知人)들의 도움을 받는다"면서 "수고비 한 푼 안 받고 무료로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70% 룰'의 직격탄을 맞는 곳은 대규모 공익법인이 아니라 출연금 10억원 안팎의 영세 공익법인들이다. 10억원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어봐야 연간 이자 수입이 1500만원(금리 1.5%)밖에 안 되는데, 그나마 70% 룰 때문에 수입의 30%인 450만원만 재단 운영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결산 공시 의무(자산 5억원·연 수입 3억원 이상)가 있는 7484개의 공익법인 중 자산이 10억원 미만인 곳은 23%(1690개)였다. 이런 영세 법인들은 이사장 한 명이 서류 작성과 전화 연락 등 실무를 혼자 떠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무실 운영비도 대부분 이사장의 사비(私費)로 충당한다. 서울 서초구의 우림장학재단을 운영하는 최승국(61·무역업) 상임이사는 "운영비가 모자라 직원이나 사무실을 따로 구하지 못하고 아내가 무보수로 재단 업무를 보고 있다"면서 "좋은 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왜 정부가 과도한 규제로 옭아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70% 룰'은 원래 은행 금리가 10%를 넘던 1997년부터 시행됐다. 처음 시행될 때는 투자 수익의 50% 이상을 고유 목적 사업에 쓰도록 했지만, 2000년부터 기준이 70% 이상으로 강화됐다. 이상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수익의 30%만 갖고 인건비와 사무실 임차료까지 해결하라는 것은 소규모 공익법인의 문을 닫으라는 얘기"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의 대표 사례"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좋은 일에 쓰라고 기부했으면 그만이지, 기부한 사람이 굳이 재단 운영까지 간섭하느냐"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공익법인 관련 정보 조사 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의 박두준 사무총장은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분들은 규제 때문에 자기 이름을 내건 장학사업이 위축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고 말했다.
☞70% 의무 지출 규정
공익법인이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지출을 하는 걸 막기 위한 규정.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공익법인이 얻은 투자 수익의 70% 이상을 장학급 지급 등의 고유 목적사업에 활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