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강영훈 前 국무총리] 김일성과 회담…소신·원칙 지킨 2인자

입력 2016.05.10 21:24

강영훈(姜英勳·94) 전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2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군과 외교, 정치, 행정, 시민사회에서 두루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산 증인이다. 청렴하고 소신과 원칙을 중시한 한국 사회의 원로(元老)였다. 만주 건국대를 다니다 학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광복 후 한국군 창설을 주도했다. 1946년 소위로 임관해 육군 제2사단장, 제6군단장을 거쳤다. 고인은 육군 제3군단 부군단장 등으로 6·25에도 참전했다.

육군사관학교 교장(중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5·16이 발생하자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사관생도들을 혁명 지지 시위에 동원하는 걸 반대하다 ‘반혁명 장성 1호’로 체포돼 서대문교도소에 100여일간 수감되기도 했다.

이 일로 예편한 고인은 40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 길에 올라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15년 만에 귀국했다. 1978년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취임했고 전두환 정부 들어 주(駐)영국 대사, 아일랜드 대사, 주로마 바티칸 교황청 대사 등을 지냈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고인은 그해 12월부터 2년간 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직 때 제주도와 마라도까지 전국 18곳을 돌며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강 전 총리는 또 1990년 9월 4일, 분단 45년 만에 최초로 열린 남북 총리회담을 책임졌다. 그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선 현직 총리 신분으로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당시 김 주석이 “강영훈 총리 각하”라 칭하자 그도 “주석 각하”로 불렀다는 일화를 자서전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총리실에서 오래 근무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라는 책에서 ‘총리의 권한과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한 사람’으로 고인을 꼽았다. 정 의원은 “실제로 그렇게 한 총리가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 7년(1991~1997년)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맡아 민간의 대북 지원 사업을 주도했다. 북한 수재민 돕기 등 대북 인도적 지원,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제의 등은 남북 교류 협력사의 큰 업적으로 꼽힌다.

고인은 생전에 스스로를 ‘벽창우(碧昌牛)’라 불렀다. 벽창우는 그의 고향인 평북 창성군과 벽동군에서 기르는 한우(韓牛)를 말한다. 힘이 좋고 고집이 센 벽창우처럼 그는 공직에 있을 때도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강직함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았다. 2008년 펴낸 회고록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에서 “한평생 나의 사고를 지배하고 행동을 결정한 준칙은 민본(民本), 민족(民族), 자유민주주의 사상이었다”고 밝혔다. 노년에도 유엔 환경계획 한국위원회 총재와 각종 사회단체 고문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해온 그는 국가 기강(紀綱) 확립 필요성 등 국가 원로로서 목소리를 내왔다.

장례는 대한적십자사 김성주 총재와 정원식 전 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공동 장의위원장을 맡아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 부인 김효수씨와 장남 성룡(변호사), 차남 효영(변호사), 딸 혜연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4일 7시.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02)30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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