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창] 전분육등법으로 그려본 인류의 미래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 2016.05.04 03:00

    작년과 올해 생산량 비교해 그 차이가 클수록
    작년보다 나아졌다고 우기는 그런 세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
    언젠가는 경제성장률은 0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조선 세종 시대에 탄생한 조세제도가 연분구등법과 전분육등법이다. 토지 1결에 부과하는 조세는 매해 풍흉(豊凶)에 따라 연분구등법으로 결정되었다. 조선 초 쌀 300두를 수확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을 1결이라 불렀는데, 1결의 실제 면적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전분육등법이었다. 토지의 질이 나쁜 6등전 1결의 면적은 1등전의 네 배 정도였다. 면적을 재는 잣대로 산출량을 이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처럼 정의된 토지 1결의 실제 면적은 농업 생산성이 좋아질수록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1998년 이후 전 세계 농업용 토지 면적은 줄고 있다고 한다. 전체 농업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같은 양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 면적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전 세계적인 규모로 보면, 굳이 개간이나 간척으로 농지를 늘려 수확량을 늘릴 필요는 이미 없어졌다는 뜻이다. 농업혁명 후 처음, 인류 역사에서 방금 막 벌어진 놀라운 일이다.

    물리학자는 사고(思考)실험을 좋아한다. 머릿속에서 생각만으로 상상의 실험을 해보는 거다. 오늘 해 볼 사고실험은 "인류의 폭발적인(물리학자는 '폭발적'을 '기하급수적'의 뜻으로 쓴다.) 생산성 증가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다. 더불어 이용할 가정은 "인구는 생산성의 증가보다 훨씬 느리게 증가한다"이다. 전혀 이상한 가정이 아니다. 여성의 권리가 향상된 산업화된 나라 어디에서나 벌어진 일이다. 미래의 인류는 인구가 줄어서 걱정이지 늘어서 걱정일 것 같지는 않다. 농업 용지의 감소는 이미 시작된 일이니 당연히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마찬가지다. 생산성의 향상으로 전 세계인이 사용할 생산품 전체를 만들기 위한 인류 전체의 노동시간 총합을 상상해 보면, 그 시간도 끊임없이 계속(인공지능이 도래할 미래에는 더욱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리학자인 나는 현재의 경향이 지속된다는 가정 아래 이런 미래를 상상한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 위 모든 사람을 먹이기 위해 필요한 농업 용지의 면적이 0으로 수렴하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먹고 함께 쓸 전체 생산물을 만들기 위한 노동 시간이 마찬가지로 0으로 수렴하는 세상, 사람이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땅을 뺀 모든 곳은 다시 숲이 된 세상, 그리고 필요한 만큼의 생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하루에 딱 1시간만 일하고, 대부분 시간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가족과 함께 숲을 거닐며 보내는 그런 미래를 상상한다. 이미 유럽 몇 나라에서 시작된 노동시간의 감축과 기본소득 보장 제도는, 한동안은 뒤로 미룰 수 있어도 어차피 우리에게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생산성과 그처럼 빠르게 늘지 않는 인구 증가'를 가정한 사고실험의 피할 수 없는 논리적 귀결이다.

    경제성장률로 재는 미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계산해 보라. 현재 기준으로는 엄청난 저성장이지만 1% 성장이 463년 동안 지속되면 총생산량은 지금의 100배가 된다. 463년 만에 사람이 100배 더 많아질 리도, 한 사람이 지금보다 100배 더 많이 먹을 수도 없다. 백 년이 될지 천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는 경제성장률이 0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한계 때문이 아니다. 쓰지도 못할 것을 백배, 천배 많이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의 생산량을 비교해 그 숫자의 차이가 클수록,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은 세상이라고 우기는 그런 세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늘 함께 해본 사고실험의 결론이다. 양적 성장은 결국 멈추고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0을 향해 줄어든다. 그때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다른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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