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방위 무임승차론', 트럼프만의 생각 아니다

조선일보
  • 김승영 영국 셰필드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입력 2016.05.04 03:00

    김승영 영국 셰필드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사진
    김승영 영국 셰필드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11년 전 타계한 조지 케넌은 대소(對蘇) 봉쇄정책의 필요성을 최초로 건의한 전략가로 미국의 극동 전략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946년 2월 소련 주재 대사관 정무공사로 근무할 때 미·소 냉전을 예견하는 장문의 전보를 타전, 워싱턴 고위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 케넌은 47년 봄 마셜 국무장관의 총애로 국무부 초대 정책기획실장에 임명돼 미국의 세계 전략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케넌은 봉쇄정책의 방식으로 대단히 이상적인 구상을 제안했다. 군사적으로 공산권 전역을 포위하지 않아도, 일본·서독·영국 등 군사·산업적 잠재력이 있는 나라들만 공산화되지 않으면 경찰국가인 소련은 내부 문제로 결국 붕괴한다는 전제였다. 그 전제 아래 이 잠재 강국들이 공산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과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케넌의 구상은 치명적인 요소를 안고 있었다. 극동 지역에서는 잠재 강국인 일본만 재건하면, 한반도나 베트남 같은 주변 지역들은 공산 치하로 넘어가도 큰 지장이 없다는 인식이었다. 군비 감축에 직면한 국방부 측도 신속한 철군을 재촉했다. 한반도는 전략적 가치가 낮을 뿐 아니라, 세계대전이 터질 경우 미국이 방어해야 할 주요 거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당시 국무부 안에서는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한 반대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마침 1947년 늦여름 소련 측이 남북한 지역에 주둔하던 외국군의 완전 철군을 제의해 왔다. 이 단계에 케넌은 정책기획실장의 입지를 활용해 국무부 내의 주저를 잠재우고, 신속히 철군을 실현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 문제를 유엔으로 회부해 남한 단독 정부를 출범시키고, 미군은 '품위 있게 철군한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케넌도 일단 단호한 군사 대응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 초동 대응 이후 줄곧 중·소 양국군의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며 38선 이북으로의 유엔군 북진을 반대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북진과 중공군 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하자 케넌은 휴전 협상을 강력히 건의했다. 케넌의 인식은, 한반도는 반드시 미국이 방어해야 할 지역이 아니며 신속한 미군 철수를 실현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방향이었다. 케넌의 유약한 대소 정책은 미국 내 강경론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타계한 뒤 미국 학계는 6·25 당시 케넌이 여론과 매카시즘 열기에 휘둘리지 않고 현명한 건의를 계속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6·25 이후 한국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신장했고,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우방으로서 가치가 높아졌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국방 예산 감축에 시달리는 미국 입장에서 케넌식 전략도 여전히 참고할 가치가 있는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최근 미국 공화당 대통령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거론해온 '한국 방위 무임승차론'은 미국 내 일각에 케넌식 전략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핵 위협이 긴박감을 더해가는 상황에서, 미국의 한반도 방어 공약에 대한 신뢰도를 평가하고 확보하는 일 역시 중요한 현안임을 케넌의 기록들은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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