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의 시대'가 곧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비롯한 많은 인쇄매체들이 존재를 위협받는 시기에 굳이 위기 속으로 들어가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잡지를 일부러 찾아내어 읽는 사람들이 있다.

  • 구성=뉴스큐레이션팀 권혜련

    입력 : 2016.05.20 08:13 | 수정 : 2016.05.20 09:23

    어떤 매체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행위 중에 하나다.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를 읽는 양복을 입은 직장인은 금융인일 가능성이 있다. 화려한 옷과 화장을 하고 보그(Vogue)지를 보는 사람은 패션업계에 종사하거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최근 이보다 조금 더 세밀한 개인의 취향에 집중하는 잡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잡지는 기성 매체가 다루지 않았거나 좀 더 좁은 영역 안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비주류 취향의 상식과 지적 호기심을 공유하거나,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해 한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모든 콘텐츠가 스마트폰 화면으로 빨려들어가 펼쳐지는 디지털 시대, 개성 강한 취향들을 종이 위에 엮어 내놓는 잡지 몇 가지를 소개한다.


    마이너한 당신의 취향을 저격

    악스트 (AXT)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나오는 문학잡지 <악스트>의 백다흠 편집장이 2015년 9월 1일 창간호를 보이고 있다. /이진한 기자

    중견 출판사 은행나무가 2015년 7월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격월간 문학 잡지. '악스트'라는 말은 독일어로 '도끼'라는 뜻이다. 천재적인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말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에서 가져왔다. 또한 제호 밑에 'Art & Text’라고 써 있어 예술과 텍스트의 약자임을 알 수 있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등 그동안 한국의 정통 문예지에서 얘기하는 무거운 국문학적인 담론들만을 다루지 않는다. 

    시인 이우성이 아이돌 그룹 '포미닛'의 현아 솔로 앨범을 리뷰하고, 서울 계동의 목욕탕에 자리 잡은 특이한 선글라스 가게를 소개한다. '악스트'의 백다흠 편집장은 "소설 독자에게는 좀 더 다각적으로 소설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또 공급자인 소설가에게는 좀 더 자유롭고 감각적인 활용이 가능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했다.

    첫 창간호부터 기존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은 소설가 천명관의 인터뷰를 실어 화제가 됐다. 마침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문제로 문단이 시끄러울 때였다. 최근에는 익명의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듀나를 인터뷰하면서 신상 파악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처음의 신선함과 의도를 잃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어찌 됐든 여러 면에서 실험적인 이 문예지는 호 발간 1주 만에 1쇄 5000부가 매진되었고 출간 한달도 안되어 2쇄를 찍으면서 1만부 이상이 팔렸다. 잡지 그중에서도 문학 잡지인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판매 부수이다.

    신개념 문예잡지 '악스트'가 탄생하기까지
    스켑틱 (Skeptic)
    2015년 9월 1일 바다출판사에서 나오는 과학잡지 <코리아 스켑틱> 박선진 편집장이 <스켑틱> 잡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진한 기자

    미국의 '스켑틱소사이어티'가 1992년 만든 과학잡지로 미국에서만 5만여명의 독자를 가지고 있다. 2015년 3월 한국에서도 첫 창간호를 냈다. 잡지 '스캡틱'을 만드는 '스켑틱소사이어티'는 1992년 당시 미국에서 팽배해있던 사이비 과학에 맞서 진정한 과학 정신을 고취하고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그동안 과학잡지가 과학적 이론과 지식, 정보를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채워졌다면 스켑틱은 이런 지식과 정보들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라는 접근법을 다룬다. '스켑틱'의 한국 창간을 주도한 바다출판사 김인호 대표는 과학 서적을 10년간 출간하면서 스켑틱을 국내로 들여올 시기를 저울질했다고 말했다. 지식이나 정보로서 과학을 다루는 잡지가 아닌 과학적 정보와 지식을 보는 관점을 다루는 잡지가 나오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이 무르익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난해하고 복잡한 과학만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 '스켑틱'의 첫 페이지에는 '스켑틱은 우리를 미혹하는 것들을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쓰여 있다. 사회적, 인류학적, 문화적, 통계학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들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검증한다. 2015년 6월에 나온 2호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효과', '음모론의 패턴' 등을 다뤘고, 최근 2016년 2월에 나온 5호에서는 '우리는 왜 증거보다 체험담을 믿는가' 등의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과학 잡지 스켑틱 "지적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 겨냥했다"
    미스테리아(Mysteria)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미스테리물 잡지 <미스테리아> 김용언 편집장이 2015년 9월 1일에 나온 <미스테리아>를 보이고 있다. /이진한 기자

    격월간 발행되는 스릴러·장르 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Mysteria)라는 이름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를 합쳐진 단어로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다른 순문학에 비해 장르소설은 그동안 지나치게 재미만을 좇는다는 인식이 강해 폄하되거나 제대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미스테리아 창간 멤버들은 미스터리 장르 소설이야말로 오히려 이야기의 힘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출판시장에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창간호가 나오자마자 온라인 서점 문학 부분 1위를 차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스테리아 잡지 역시 미스터리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독자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를 동시에 하고 있다. 김용언 편집장은 "미스터리'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미스터리'도' 관심 있는 독자를 아우르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영화 '나를 찾아줘'를 가정스릴러를 규정하고, 젊은 지식층에 인기있는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 동양대 교수를 필자로 내세운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Missing Link'라는 코너가 눈에 띈다. 그동안 순문학으로 바라봤던 작품들 중에서 범죄물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연결고리를 찾아가면서 우리 문학 안의 '미스터리 장르물' 계보를 찾아가는 코너다. 이 코너를 따라가다 보면 박완서 작품 안에서도 미스터리적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단 하나의 취향

    매거진 B (Magazine B)
    ▲ 잡지‘B’의 표지들. 왼쪽부터 스위스 가방 제품‘프라이탁’을 다룬 창간호, 캠핑용품‘스노우피크’를 다룬 3호, 영국 미용 제품‘러시’를 다룬 6호, 국 산 소주‘화요’를 다룬 9호. /조선DB

    2011년 11월에 창간된 브랜드 전문 월간지. 매달 한 권의 잡지 안에 하나의 브랜드 또는 제품에 관한 얘기만을 다룬다. 단 한장의 광고 없이 제품에 대한 설문조사, 제작방식, 제품군 소개, 잘 어울릴 만한 다른 아이템, 소비자들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등으로 100페이지가 넘는 지면을 가득히 채웠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제품에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는 B매거진의 컨셉은 '제품과 브랜드의 다큐멘터리'이다. 제작방식과 담고 있는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기존의 잡지와는 달라 업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언뜻 보면 해당 제품과 브랜드에서 돈을 받고 해주는 거대한 광고같지만 'B매거진'은 금전적 지원을 받지 않는다. 브랜드 선정부터 취재, 그리고 내용 구성과 편집까지 모두 내부 회의에서 엄격한 기준을 통해 결정한다. 광고주의 개입이 없으니 제품과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소비자의 시각으로 펼쳐낼 수 있다. 이 잡지가 단순 잡지로 보여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직접 제품을 오랫동안 써보고, 취급하는 소비자나 중간 단계 공급자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다루면서 해당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첫 장부터 끝까지 한 제품만 다뤄… 광고 인듯 광고 아닌 잡지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Biography Magazine)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을 잡지 형식으로 한 권에 담아낸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오른쪽부터 그동안 발행된 김부겸 의원, 심재명 대표, 소설가 이문열, 최재천 교수 편.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국내 첫 평전 잡지. B매거진이 하나의 제품 브랜드를 다룬다면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한 인물의 농축된 삶을 담는다. 매호마다 한 인물을 소개하고 그의 삶과 철학을 시간순이 아닌 에피소드와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했다. 인물의 직업과 업적에 따라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 제작사 대표 심재명의 이야기를 다룬 3호에서는 시나리오, 숏, 미쟝센 등 영화용어 중심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했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편에서는 그의 연구 업적의 배경이 되는 이론을 그래픽으로 보여줘 그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잡지 마지막 부분에는 장시간에 걸친 인물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한 사람의 철학, 삶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것이 이 잡지의 모토다. 이연대 발행인 겸 편집장은 "고사(枯死) 직전인 잡지 산업에 무모한 시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인물에 대한 평가가 박한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대를 거스른다, 평전 잡지 '바이오그래피'
    무브 매거진 (MOVE Magazine)
    지난 4월 창간호를 발행한 여행 잡지 '무브'. 하나의 여행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그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생활 여행의 모습을 여유있는 시선으로 그려낸다. /사진 제공=무브

    여행지 한 곳만 집중적으로 얘기하는 잡지도 있다. 이제 창간한 지 한 달이 채 안되는 무브 매거진은 한 호에 한지역만을 담아 소개한다. '럭셔리 여행'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럭셔리는 호화 사치스러우며 소비지향적 여행이라는 뜻이 아닌, 여행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와 취향이 있는 여행을 지향한다고 편집자는 소개한다.

    서점 매대의 수많은 여행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쉽게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무브 매거진은 다른 매체에서는 접할 수 없는 여행의 취향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 개인의 취향과 경험이 배어있는 여행 얘기를 들려줌으로써 맛집 명승지 정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행의 정취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빡빡한 일정과 화려한 보여주기식 여행이 아닌 여유를 가지고 한 곳을 지긋이 즐기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여행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은 글과 사진들은 장소의 분위기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안내서이자 한 편의 기행문이 된다. 한 권씩 살펴보면서 해당 여행지를 하나씩 찾아가보는 계획을 세워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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