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하나 만드는데 평균 1년 "필요한 서류만 20종, 150장 분량"

입력 2016.04.30 03:00

['40년 규제' 묶인 공익법인] [2부­-1] 벽 높은 설립 절차
재단 원금 10%까지 쓸 수 있게 법 개정안 국회 법사위 통과

2009년부터 경기 성남시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대학생 750여 명에게 장학금 11억3000만원을 지급해온 '태경장학회'를 운영하는 박철(54)씨는 이 장학 재단을 세우는 데 8년이 걸렸다.

지난 2001년 박씨는 보따리 행상을 하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던 어머니 이름을 딴 장학 재단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재단 설립 절차를 물으려고 교육청을 찾아갔다가 뜻을 접었다. 담당 공무원이 "혼자 조용히 기부하면 되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재단을 만들려고 하느냐"며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박씨는 "장학 재단을 만들겠다는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는 공무원 태도에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금융 투자업으로 성공한 박씨는 2006년에 두 번째 장학 재단 설립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엔 담당 공무원이 "발령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를 잘 모르니 다음에 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을 듣고 또 재단 설립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그 사이 개인 차원에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 몇몇에게 장학금을 줘 온 박씨는 2009년 세 번째 도전 만에 장학 재단 설립에 성공했다.

공익 법인 관계자들은 "한국에선 재단 설립부터가 어렵기 때문에 절반 이상이 시작 단계에서 포기한다"고 말한다. 본지가 공익 법인 설립을 돕는 행정사 10명을 취재한 결과 법인 설립에만 평균 1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립에 필요한 서류가 18~20종에 이르고 이 서류를 합친 분량은 평균 150장이나 됐다. 서울 종로구의 행정사 A씨는 "서류를 갖춰도 담당 공무원마다 설립 허가 기준을 달리 해석하기 때문에 퇴짜를 맞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한편 국회 법사위는 28일 초저금리 때문에 운영난을 겪고 있는 공익 재단이 출연금(원금)의 최대 10%까지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공익법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는 원금은 묶어둔 채 이자 수입만으로 재단을 운영하도록 돼 있다. 이 개정안이 다음 달 19일부터 열리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공익 법인은 올 하반기부터 주무 관청 허가를 받아서 원금 일부를 사회 공헌 활동에 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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