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뼈는 알고 있다… 내가 왜 죽었는지

    입력 : 2016.04.30 03:00 | 수정 : 2016.04.30 10:21

    3명의 살인사건으로 본 뼈 속 '다잉 메시지'

    1500년 전 그날, 송현이는…
    가야시대 순장된 16세 소녀 유골… 마모된 다리뼈로 시녀 신분 밝혀
    가지런히 누운 뼈 상태로 볼 때 살해당한 뒤 묻혔을 가능성 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대퇴부뼈만으로도 키 알 수 있어
    결핵·매독 등 질병 흔적도 남겨… 머리뼈 사진으로 얼굴까지 복원

    영국王 리처드 3세, 누명을 벗다
    500년 만에 발견된 유골 분석
    문학 속 심한 꼽추 묘사와 달라… 훼손된 두개골, 전투 중 사망 확인

    선사시대 '아이스맨'
    알프스 얼음 속 갇혀있던 미라
    내장에서 빵·채소·사슴고기 발견… 성대 복원해 목소리 재생 연구도

    "인간의 몸에는 뼈 206개, 치아 32개가 있으며, 각각에는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법의학자 클라이드 콜린스 스노(1928~2014)의 말이다. 그는 이라크와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학살 현장을 누비며 버려진 뼈들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줬다. "뼈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 스노와 같은 법의학자와 고인류학자들은 첨단 과학과 역사적 지식을 활용해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들은 어떻게 가야 시대 소녀, 알프스 산맥을 누비던 석기시대 사냥꾼, 폭군이라는 오명을 쓴 영국 왕(王)의 한 맺힌 목소리를 들었을까.

    "1500년 만이라네요. 제가 세상 빛을 본 게요. 가야땅, 비사벌이 제 고향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녀였죠. 주인이 돌아가시면서 열여섯 제 인생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죽어서도 주인을 모시라며 함께 묻혔습니다. 영원히 잠들 곳인 줄 알았던 무덤 속에서 다시 나오니 사람들이 절 '순장 소녀 송현이'라고 부르더군요."

    2007년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군에서 남성 두 구, 여성 두 구 등 네 구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중 무덤 입구 쪽에서 발견된 여성 유골 한 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하게 보존돼 역사학자와 과학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굴(盜掘) 등으로 대형 고분에서 온전한 유골이 발견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송현동 고분에서 발굴돼 '송현이'로 이름 지어진 이 유골을 분석하기 위해 고고학, 법의학, 유전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였다. 송현이는 이들에게 1500년 전의 얘기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컴퓨터 단층촬영, 방사성 연대 측정, 유전자(DNA) 검사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됐다.

    골반의 형태를 볼 때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었다. 피부와 머리카락을 재구성했을 때의 키는 153.3㎝였다. 다리뼈에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고, 발달 상태를 볼 때 사망 당시 16~17세 정도였다. 치과 분석 결과 아직 나지 않은 사랑니도 발견됐다. 특히 과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다리뼈 상태였다. 나이에 비해 정강이뼈와 양쪽 종아리뼈에 급격한 운동을 반복하면서 생긴 변형이 심했다. 무릎을 꿇는 행동을 자주 할 때 나타나는 형태였다. 이 점에서 송현이는 주인을 모시던 시녀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금귀고리는 주인의 최측근 시녀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뒤통수뼈 부분에서 나타난 무수한 구멍은 송현이가 빈혈을 앓았다는 점도 알려줬다. 하지만 특별한 외상이나 치명적인 질병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16세에 불과한 소녀는 왜 죽었을까. 무덤 속에서 발견된 다른 사람들 역시 사인(死因)을 찾기 힘들었다. 과학이 아닌 역사학이 답을 줬다.

    3세기 말부터 6세기 초까지 신라와 가야 일대에는 높은 사람이 죽으면 시녀나 주변인을 함께 묻는 순장(殉葬) 풍습이 있었다. 가지런히 누운 뼈 상태를 봤을 때 산 채로 묻혔을 가능성은 낮았다. 독을 마시거나 질식당해 숨을 거뒀을 가능성이 컸다. 영문도 모른 채 살해당했는지, 아니면 숙명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송현이만 알 수 있다. 하지만 1500년 뒤 영원한 안식에서 다시 깨어나, 후손에게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게 될 줄 몰랐던 것은 확실하다.

    뼈는 그 사람의 '삶의 이력'을 담는다. 무엇을 먹었고, 어떤 일을 했는지 다 뼈에 기록된다. 뼈를 분석하면 그 당시 사람들의 성비(性比), 노년층의 비율, 평균수명 등 사회경제적인 분석도 가능하다. 남성과 여성은 골반뼈 모양이 다를뿐더러 얼굴뼈 역시 남성이 더 크고 강인한 이미지를 보인다. 나이는 치아로 쉽게 알 수 있다. 유치와 영구치가 섞여 있는 경우, 영구치만 있는 경우, 이가 닳아서 없어진 경우에 따라 각기 다른 나이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집단 매장지를 분석하면, 평균수명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전신 뼈가 없어도 대퇴부뼈만으로 키를 알아낼 수도 있다. 대퇴부뼈는 키와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뼈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하면 생전에 먹었던 음식을 알아낼 수 있다. 쌀·밀·견과류를 많이 먹었던 사람과 조·피·수수 등을 먹은 사람은 같은 시대라도 뼈 속에 남아 있는 탄소동위원소의 비율이 다르다. 또 육식을 주로 한 사람과 채식을 주로 한 사람은 질소동위원소가 다르게 나타난다. 과거 사람들이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도 뼈가 말해준다. 치아 마모가 유난히 심한 사람들은 가죽 연마 등의 분야에 종사했고, 귓속뼈가 변형된 사람은 해녀처럼 바다 밑 압력에 자주 노출됐다고 볼 수 있다.

    도시화 알려준 기생충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는 "역사에 기록된 생활상은 상류층을 주로 담고 있어, 서민들의 생활을 알기는 힘들다"면서 "사람들의 뼈를 읽으면 역사에 없는 것들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도 뼈에 기록된다. 결핵, 매독, 나병이 대표적이다. 결핵이 심하면 척추를 파괴하고, 매독은 뼈에 뒤틀린 흔적을 남긴다. 영양 섭취가 부실했다면 치아의 에나멜 부분에 가로 줄무늬가 생긴다. 이를 통해 역사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은진 연세대 치대 교수는 "조선 효종 무렵에 매독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직까지 이 시대 유골에서 매독의 흔적이 명확하게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한 건의 의심 사례를 발견해 연구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뼈 속에 남은 병원체를 통해 인구 이동을 밝히기도 한다. 최근 미국 고고학회에서 중세의 런던, 바르셀로나 등에서 발견된 유골의 DNA를 분석한 결과 중세 유럽에 창궐했던 페스트가 19세기에 중국으로 전파됐음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중세 유럽의 페스트균이 진화해 19세기 중국에 창궐한 페스트가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화장(火葬)하고 남은 뼈조차도 할 말이 있다. 우은진 교수는 최근 삼국시대에 화장된 뼈를 분석하고 있다. 우 교수는 "뼈와 주변 목탄을 살피면 당시 어떤 온도에서 화장이 이뤄졌고, 얼마나 오랜 시간 화장이 진행됐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다"면서 "특히 고려 시대에는 화장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시대별 장례 기간 등 화장 풍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밝혀낼 계획이다.

    고인류학 연구에서는 기생충도 빼놓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가 곧 기생충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알은 시간이 지나도 껍데기가 사람의 뼈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신동훈 교수는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와 함께 기생충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채소 재배에 인분을 사용하면서 기생충에 반복적으로 감염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신 교수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17세기 무렵에 급격히 대도시 인구밀도가 높아졌는데, 이들의 식량 공급을 위해서 인분을 사용해 수확량을 높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면서 "그 결과 기생충이 인분을 통해 배출됐다가 다시 채소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경로가 고착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만 발견된 기생충을 통해 과거 기생충의 이동을 엿본 연구도 있다. 1988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참굴큰입흡충은 당시 조사 결과 전남 신안 지역의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났다. 하지만 2006년 경남 하동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의 미라, 2011년 충남 삽교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남성의 미라에서 잇따라 참굴큰입흡충의 알이 발견됐다. 조선시대에 이들이 전남 신안까지 가서 굴을 먹고 왔을 가능성보다는 참굴큰입흡충이 그 당시에 여러 곳에서 번성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뼈만으로 생전 얼굴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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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개골로 얼굴까지 복원, 강릉 미라… 서울대 의대 이원준 박사가 강릉에서 발견된 최경선 미라의 얼굴을 복원한 과정. 실제 미라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두개골 사진만을 토대로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미라와 90% 이상 일치하는 얼굴을 만들어 낸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이순신 장군, 논개 등의 모습은 화가가 상상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조만간 뼈만 있다면 과거의 인물을 실제 모습처럼 보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이원준 박사는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뼈나 미라에서 생전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이 박사는 2007년 강릉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최경선 미라의 머리뼈 사진을 받아 복원을 진행했다. 미라 사진은 보지 않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눈과 귀, 코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뼈에 근육과 피부를 붙여 나갔다. 근육과 피부의 형태나 두께는 한국인 평균으로 구했다. 복원된 얼굴을 원래의 미라처럼 입을 벌린 상태로 바꿨다. 여기서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로 변형시킨 뒤 실제 미라와 비교하자 90%가 넘는 일치도를 보였다.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이 박사는 "과거 인물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고, 실종된 사람의 신원 등을 확인하는 기술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500년 만에 누명 벗은 폭군

    두개골로 얼굴까지 복원, 강릉 미라
    잉글랜드 왕 리처드 3세의 초상(왼쪽)과 2012년 레스터시 공용 주차장에서 발견된 그의 두개골. / 영국 국립초상화박물관
    흰 장미의 요크 가문과 붉은 장미의 랭커스터 가문이 벌인 30년간의 잉글랜드 왕위 쟁탈 전쟁. 이 장미 전쟁 와중에 요크 가문에서 태어난 리처드는 형 에드워드 4세가 요절하자, 조카의 섭정을 맡았다가 왕위에 올랐다. 바로 영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폭군(暴君) 리처드 3세이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는 리처드 3세를 두 조카와 아내, 수많은 측근을 죽인 권력욕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평온한 죽음을 맞는 폭군은 없는 법. 광기 어린 왕은 1485년 랭커스터 가문 헨리 튜더와의 보즈워스 전투에서 불과 32세 나이로 전사한다. 그의 시신은 '강에 버려졌다' '수도원에 묻혔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했다.

    과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숱한 문헌을 뒤져 리처드 3세의 유골을 추적했다. 마침내 2012년 9월 레스터 시의회 주차장에서 찾은 유해 한 구를 리처드 3세로 지목했다. 컴퓨터 단층 촬영(CT), 연대 측정을 통해 유골은 30~34세 정도 중세시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뺨에 있는 상처들은 죽은 뒤에 생긴 것으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시신을 훼손하려고 했던 증거였다. 두개골의 큰 함몰과 뒷부분의 관통상은 전투 중에 죽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수많은 기록 속의 리처드 3세와 일치했다.

    다만 리처드 3세의 척추는 기대와 달랐다. 희곡에서 '꼽추왕'으로 묘사된 것과 달리 앞이 아닌 옆으로 휘어 있었다. 대신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높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팔은 셰익스피어의 생각과 달리 깡말라 비틀어지지도 않았다.

    최종 확증은 유전자(DNA) 검사에서 나왔다. 연구팀은 리처드 3세의 누나인 앤의 17대 조카 마이클 입센의 DNA를 채취해 유골에서 얻은 DNA와 비교했다. 일반적으로 DNA는 부모에게서 절반씩 전해지지만, 세포를 이루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어머니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모계 혈통이 맞다면 미토콘드리아 DNA는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센과 유골의 DNA는 완벽하게 일치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리처드 3세가 뛰어난 정치가였을 뿐, 폭군이 아니었다고 본다. 역사가 승자의 시각에서 쓰이기 때문에 리처드 3세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이다. 500년 방랑을 끝내고, 누명을 벗은 왕은 2015년 3월 26일 후손 입센이 직접 만든 관 속에 누워 레스터 대성당에서 안식에 들었다.

    얼음에서 튀어나온 선사시대인

    1991년 알프스 빙하에서 독일 관광객들이 미라 한 구를 발견했다. 미라에는 외츠탈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뜻에서 '외치'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얼음에서 나왔다고 '아이스맨(iceman·얼음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완벽한 형태를 갖춘 모습에 과학자들은 그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중세시대 정도의 사람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연대 측정 결과 외치는 무려 5300년 전 사람이었다. 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선사(先史) 시대 사람이 얼음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심지어 외치는 시신을 일부러 방부처리한 이집트 미라와 달리 수분까지 포함돼 내부의 장기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장 완벽한 인류학 자료인 것이다.

    외치의 사인(死因)은 아직 수수께끼이다. 가장 유력한 주장은 뒤쪽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숨졌다는 것이다. X선 촬영 결과 외치는 어깨와 등으로 이어지는 동맥에 화살에 맞은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머리 쪽에서도 치명적인 상처가 발견됐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외치가 화살을 맞아 정신을 잃은 뒤 바위 등에 부딪혔거나, 화살에 맞은 뒤 둔기로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외치는 선사시대 인류의 질병이나 음식 연구에도 큰 발전을 가져다줬다. 외치의 내장에서는 빵과 채소, 사슴고기가 발견됐다. 이미 5000년 전에 인류가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는 증거다. 위에서는 현대인에게서 흔한 위염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도 발견됐다. 이 박테리아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정설을 흔들고 있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가 나타난 뒤 유럽으로 이동했다고 본다. 하지만 외치의 박테리아는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인에게서 발견되는 형태와 유사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인류가 이동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치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은 미라와 그 주변에서 발견된 유품을 재구성해 3D 프린터로 사냥꾼 외치의 모습을 재현했다. 최근에는 외치의 목소리를 재생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탈리아 볼차노 산 마우리치오 병원 연구팀은 CT 촬영 사진을 토대로 외치의 성대를 모형으로 만들었다. 연구팀은 앞으로 1년간 외치가 죽은 뒤 거친 변형 과정을 거꾸로 돌려 생전의 성대를 복원할 계획이다. 그러면 생전의 목소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외치가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단서도 얻어낼 수 있다고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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