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이 일본을 3대0으로 꺾었다. 지난 34년 1무19패 끝에 따낸 첫 승리다. 헬멧을 벗고 보니 캐나다 출신 맷 달튼을 비롯해 백인 선수가 여섯 명 섞여 있었다. 이들은 애국가도 따라 불렀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3년 '특별 귀화'를 한 백인 한국인이다. TV 중계를 지켜보던 이가 "저렇게 이겨도 이긴 거라고 할 수 있나"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누군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순혈주의 타령이냐"고 맞받았다.
▶화교 출신 후인정은 1994년 귀화해 10년 넘게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뛰어난 배구 선수였지만 화교여서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한을 풀어줬다. 중국 출신 당예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에 탁구 단체전 동메달을 안겼다. 그는 한국에서 7년을 산 뒤 일반 귀화 시험을 통과했다. 농구에선 한국 피가 섞인 이승준·문태영·문태종이 귀화해 국가대표가 됐다. 그런 전례에 비춰 보면 '아이스하키 특별 귀화 6인방'은 태극 마크 역사에서 생소한 존재다.
▶한국과 아무 인연이 없던 이들은 이제 김치볶음밥을 즐겨 먹고 어른에게 모자 벗어 인사한다. 이들은 올림픽에 출전하려고 한국에 왔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한다. 감독은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교포 백지선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였던 그는 "아이스하키는 이미 국적의 경계가 사라진 스포츠"라고 했다. 일본도 1998 나가노올림픽을 앞두고 여덟 명을 귀화시켰고 영국도 1994 세계선수권에서 열다섯 명이 귀화 선수였다. 그렇다 해도 국내에선 '평창용 일회성 귀화'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여자 프로농구에선 '한국계 혈통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시즌 하나은행 준우승을 이끈 첼시 리는 미국 국적 '해외 동포 선수'로 분류됐다. 부모나 조부모가 한국 국적자이면 국내 선수 신분으로 뛸 수 있게 한 제도다. 그녀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국가대표가 되려고 특별 귀화를 추진하다 서류 위·변조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 수사로 진실이 가려지겠지만 역시 전에 없던 일이다.
▶스포츠엔 국경이 없다고 한다. 다문화·다인종을 열린 마음으로 포용한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독일 축구도 아프리카·터키·동유럽계 선수들을 받아들여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한국 아이스하키도 귀화 선수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저변과 인프라를 갖추려는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손쉽게 성적만 내려는 목적이라면 필요할 때마다 '용병'을 사들이는 중동의 오일 머니(Oil money)와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