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40분 서울중앙지법 558호 법정(法廷). 법정의 방청석 왼쪽 복도에서 한 소년이 휠체어에 앉은 채 "쌔액 쌔액" 거친 숨소리를 연신 토해냈다. 옥시가 출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3)군이다. 모자를 눌러쓴 채 힘겨워하는 임군의 옆에는 산소통이 놓여 있고, 산소통에서 나온 가느다란 튜브가 임군의 코에 연결돼 있었다. 임군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산소통의 공기가 튜브를 통해 빠져나오면서 소리를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정인숙)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는 임군을 비롯한 피해자 20여 명과 피해자들의 변호인들,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측의 변호인들이 참석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들은 법정의 왼쪽 원고(原告) 측 변호인석과 방청석에 자리했고, 살균제 제조사 측 변호인은 오른쪽 피고(被告) 변호인석에 앉았다. 임군 등 피해자들은 옥시 등이 만든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본격적으로 보고된 지 1년 뒤인 2012년 옥시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임군은 돌이 갓 지난 2004년 처음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옥시가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를 시장에 내놓은 것은 2001년이다. 임군을 진단한 의사는 '폐가 손상됐다'는 진단을 내리면서도 원인은 모르겠다고 했다. 임군은 2005년 병원에서 퇴원했지만 그때부터 산소호흡기의 도움이 없이는 제대로 숨을 쉬기 힘들었다. 기도 협착, 장기 손상, 골다공증 등 다양한 합병증이 임군을 계속 괴롭혔다. 임군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찾아주기 위해 이사를 아홉 번이나 다녀야 했다.
임군 부모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한 뒤에야 아들이 아픈 이유를 알게 됐다. 임군의 엄마는 갓난아기였던 임군 옆에 가습기를 뒀고, 임군이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병실에서 가습기를 켰다.
임군 등이 낸 소송의 재판은 이번이 10번째다. 옥시 등 제조사들은 '과연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폐 손상의 원인이 된 게 맞는지 인과(因果)관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제조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다. 재판부는 "검찰 수사의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판을 속개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나올 검찰 수사 결과가 임군 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26일 옥시의 신현우(68) 전 대표와 김모 전 연구소장, 최모 전 선임연구원 등 3명을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이들은 옥시가 2001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출시했을 때 각각 대표와 연구소장,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었다.
신 전 대표 등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에 검사 3명을 추가 투입했다. 검찰 관계자는 "오래된 사건이고 피해자가 많아 수사할 게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