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카메라로 고발한 '북한판 트루먼 쇼'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6.04.26 03:00

    27일 개봉 北다큐 '태양 아래' 연출한 러시아 만스키 감독

    만스키 감독 사진
    /장련성 객원기자
    "시작"이란 외침이 들리자 소녀 진미는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나라는 지구에서 해가 가장 먼저 솟아오르는, 동쪽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진미의 아버지는 봉제 공장 노동자, 어머니는 두유 공장 노동자다. 평양에 사는 가족은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서 저녁을 먹는다. 영화 속 진미네 가족은 평범하고 완벽한 가정 같지만 이 장면은 거짓이었다. 진미네 집은 이 아파트가 아니다. 진미 아버지의 진짜 직업은 신문사 기자, 어머니는 식당 종업원이다. 진미는 북한 당국이 만든 각본대로 연기한 것이다.

    러시아 출신 비탈리 만스키(53·사진) 감독이 2014년 북한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가 27일 개봉한다.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25일 만난 만스키 감독은 "북한과 협의하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로 했지만, 모든 장면이 철저히 통제와 연출 아래서 이뤄졌다.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세상을 그린 영화 '트루먼 쇼'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목표를 바꿔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를 내놨다. 거짓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는 과정을 찍은 것이다.

    만스키 감독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금 지구에서 북한만큼 사회주의 체제가 강력한 국가가 없다. 나는 러시아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서 북한에서 영화를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좋다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대답을 피한다면 그는 아주 비양심적이고 뻔뻔한 사람이다."

    영화는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의 일상을 담았다. 촬영 인물, 장소, 대사 등 모든 것은 북한 당국에서 지시한 대로 해야 했다. 만스키 감독과 그의 제작진은 언제나 감시를 받았다. 예컨대 여성 노동자가 최근 생산량이 얼마나 늘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에서 '감시자'가 촬영 도중 더 열성적으로 하라고 여러 번 요구하는 식이다. 만스키 감독은 매일 촬영분을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의 한 장면. /THE픽쳐스 제공
    북한이 외부 세계와 차단됐다는 점이 오히려 감독에겐 도움이 됐다. 디지털 카메라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북한 당국자들이 촬영 전 준비 시간이나 촬영 중간에도 영상이 찍히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만스키 감독은 실제 촬영분의 30% 정도만 제출했다. 감독은 "그들이 내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글을 한 번이라도 뒤져봤다면 내게 연출을 맡기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숨겨둔 촬영분을 어떻게 북한 밖으로 갖고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말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탈린 블랙 나이트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기 전 북한 외무성은 러시아 외무부에 서한을 보내 '영화 상영을 금지하고, 영화를 폐기하며, 감독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그 이후에도 북한 당국이 세 통의 편지를 보냈다. 긴히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북한을 방문해달라는 내용이었고, 모든 편지는 '진미가 당신을 매우 보고 싶어 한다'로 끝을 맺었다. 나는 거기에 제 발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만큼 멍청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답장을 이렇게 썼다고 했다. "나는 북한에서 이 영화를 공개하고 싶다. 북한 사람들과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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