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이름 후지모리… 페루는 향수병에 걸렸다

    입력 : 2016.04.15 03:00 | 수정 : 2016.04.15 07:36

    독재자 오명 알베르토 후지모리, 8년째 감옥에 갇힌 상태이지만 딸·아들은 대통령·국회의장 유력
    지지자들 경제성장 시절 그리워해… 인권탄압 겪은 일부 시민들은 "후지모리는 절대 안 돼" 거부감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인권 탄압과 부정 부패 혐의로 25년형을 받고 2009년부터 감옥에 있다. 삼촌과 숙모들도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국외로 떠났다. 그런데 최근 대선 1차투표에서 선두를 차지한 딸(게이코)은 오는 6월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다. 아들(겐지)은 국회의장 선출이 유력시된다. 페루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짓말 같은 현실이다.

    페루 국민은 도대체 왜, 일본 이민자인 후지모리 가문의 '마법'에 걸린 걸까. 주요 외신들은 이런 현상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 시절에 대한 페루 국민의 향수병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페루에서 후지모리 전 대통령(1990~ 2000년 재임)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그의 재임 시절 고질적인 경제 위기가 개선되고 국민을 괴롭히던 게릴라가 소탕된 것을 부각시키는 반면, 반대파들은 그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독재정치를 하면서 암살단을 조직해 반대파를 숙청하는 등 인권을 탄압했다고 비판한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1990년 당시 페루의 인플레이션은 무려 7600%에 달했다. 하지만 그의 적극적인 경제 개혁과 물가 안정 대책에 힘입어 불과 1년여 뒤 인플레이션은 139%로 떨어졌다.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빈곤층 삶의 수준도 크게 향상시켰다. 고속도로 등 국가 주요 기반 시설이 마련된 것도 그때였다.

    중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는 "후지모리 대통령이 물러나고 민주적으로 정권을 잡은 알레한드로 톨레도 정부가 들어서자 빈부 격차가 커졌고 신규 일자리는 거의 창출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2010년 8.8%로 정점을 찍었던 페루 경제성장률은 이후 감소 추세다. 이 때문에 경제 안정화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듣는 후지모리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페루의 대표적인 반(反)정부 게릴라 단체 '빛나는 길'을 무력화시켰다는 점도 후지모리의 업적으로 꼽힌다. 1980년대부터 10여년간 '빛나는 길'의 테러로 희생된 페루 국민은 6만9000여명에 이른다. 후지모리 지지자 루스 포우차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역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테러와 한바탕 전쟁을 벌일 배짱이 있었다"고 했다.

    반면 '후지모리'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느끼는 페루 국민도 적지 않다. 저팬 타임스는 "후지모리가(家)는 페루에서 가장 일그러진 가족"이라고 보도했다. 한때 퍼스트레이디였던 수산나 히구치는 남편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 1994년 이혼한 뒤 이듬해 대선에서 남편 낙선 운동을 주도하고, 이후 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후지모리 '저격수'가 됐다. 그는 남편의 오른팔인 전 국가정보부장에게 납치돼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딸인 게이코는 엄마의 주장을 '망상'이라고 했다. 이후 모녀 관계도 소원한 상태다.

    지난 5일 페루 리마 마르틴 광장에는 '후지모리는 절대 안 돼'라는 팻말을 든 시민 5만여명이 모여 게이코 낙선 시위를 벌였다. 리마 시내 담벼락 곳곳엔 '(게이코) 후지모리 반대'라는 낙서가 적혀 있다. 외신들은 친(親)후지모리 정서와 반(反)후지모리 정서의 귀추가 오는 6월 대통령 결선투표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게이코는 아버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최근 "내가 대통령이 되어도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게이코 후지모리는 (독재와 국가 발전이라는) '이중적 유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그의 대선 승리를 가늠 짓는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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